[토요워치]'일상'을 비우고 '참 나'에 빠지다

■대한민국은 명상중
경쟁에 치이고 업무 압박…'생각 빼기' 열풍


‘명상 열풍’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거세다. 빌딩 숲으로 가득한 서울 종로·강남역·여의도 등지에는 직장인들이 많은 지역에 가면 명상 센터를 비롯해 요가원이 성업 중이요, 명상 센터와 요가원마다 수강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주요 대기업들은 앞다퉈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병원과 군부대에서도 힐링 프로그램으로 명상을 속속 채택하고 있다.

‘속도의 시대’ ‘4차산업 혁명 시대’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명상과 요가가 젊은 직장인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과잉 속도와 자극, 경쟁에 지치고 업무와 역할의 억압에 짓눌린 심신에 ‘힐링’이 돼주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여기에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겨나 직장인의 명상 열풍은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너무나 기계화됐고 모든 것은 급격하게 빠르게 처리돼야 하며 치열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신적인 에너지 소비가 많고 특히 자극에 정신을 많이 소비한다. 만나는 사람도 많고 처리해야 할 정보 역시 이전에 비해 훨씬 많다. 자극에 반대되는 정적인 것들, 요가를 비롯해 명상에서 힐링을 찾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치열한 기계화 사회에 피로감

젊은 직장인들 ‘심신 힐링’ 찾아



사실 명상과 요가가 대중적으로 ‘힐링’의 수단으로 인식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묵언수행·벽면수행 등의 형태로 알려지기도 한 명상은 그동안 기행으로 여겨져 웃음을 유발하고는 했으며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긴 머리에 씻지도 않은 채 명상을 하는 등장인물은 코믹 캐릭터로 설정되기 일쑤였다. 요가 또한 처음에는 묘기, 이후에는 다이어트 방법 정도로만 인식돼 ‘요가의 아이콘’ 가수 이효리가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가가 수행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을 때 ‘개그’로 치부될 정도로 대중의 요가에 대한 인식 수준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명상은 단순히 ‘힐링’을 넘어 ‘자기 성찰을 통한 자아실현의 극대화’ 수단으로까지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하루에 두 시간씩 명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비파샤나 명상을 통해 얻은 집중력과 평정심이 없었다면 ‘사피엔스’나 ‘호모데우스’ 같은 책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명상의 힘은 대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라리 교수와 마찬가지로 국내 직장인들의 관심은 비파샤나 같은 ‘마음챙김 명상’에 쏠리고 있으며 그 이유는 현대사회의 지나친 피로감인 것으로 명상인들은 보고 있다. 윤병수 한국명상학회 회장은 “불교의 수행법인 비파샤나에 기반을 둔 마음챙김 명상의 방식이 프로이트 등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나오는 심리 치료 기제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 병원 등에서는 마음챙김 명상을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으로 사용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명상 전후 검사를 하면 ‘행복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등이 명상 후에 그 수치가 늘어난 것 등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명상땐 ‘행복 호르몬’ 수치 껑충

요가는 ‘자신에게 집중’ 극대화

‘고엔카의…’ 등 관련 책도 불티



남방불교에서 유래한 마음챙김 명상은 집중명상과 달리 대상에 온전히 마음을 모으기보다는 대상을 고정하지 않고 ‘지금-여기(here and now)’ 경험되고 있는 것에 마음을 모아 판단 없이 집중하고 바라보는 명상이다. 이 같은 마음챙김 명상은 지난 1979년 메사추세츠대병원 존 카바트진 교수가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으로 개발한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로 더 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윤 회장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사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확행’이 유행하고 삶의 질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진 것”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이 자극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명상 등 정적인 것에서 휴식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이어트의 수단 정도로 치부됐던 요가도 무게중심이 ‘힐링’으로 옮겨졌다. 요가의 최종 목적이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행복을 찾는’ 쪽으로 굳어진 것이다. 조혜정 한국요가협회 회장은 “요즘 사람들은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도 없이 타인을 바라보며 비교한다”며 “요가를 통해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쉬고, 비우고, 채우는 행위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이어트가 요가의 일부 기능일 수는 있지만 요가는 ‘심작용의 지멸’, 즉 마음의 작용을 없애는 행위이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게 요가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출판가에서도 ‘힐링’에 초점이 맞춰진 명상과 요가 관련 서적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고엔카의 위빳사나 10일 코스’ ‘명상에 답이 있다’ ‘달라이 라마가 전하는 우리가 명상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힐링 이모션’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명상 인문학’ 등이 바로 그것. 손민규 예스24 인문 MD는 “요가·비파샤나는 모두 수천 년에 걸쳐 쌓여온 인류의 수행 전통으로 그 역사를 버텨왔다는 점만으로도 현대인에게도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에는 수행을 하는 이유가 종교적 목적인 해탈이었다면 현대인에게는 종교적 목적보다는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실용적 목적이 강하다”고 말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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