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포유 <14> 류이치 사카모토 ‘Merry Christmas, Mr. Lawrence’




패션처럼 음악도 계절을 두서너 걸음 앞서 간다. 찬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힐 무렵부터 간간이 들리던 캐럴은 12월에 들어서면 절정에 이른다. 캐럴이 아니어도 한 해의 마지막에 다가서면 누구에게나 생각나는 곡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라면 구들장 아랫목 그리운 긴 겨울밤을 함께하기에 제격이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감각의 제국’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 뉴웨이브 영화의 기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작품이다.

믹 재거와의 동성애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70년대 글램록의 창시자 데이비드 보위, ‘말 많은 배우’ 기타노 다케시,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류이치 사카모토 등 ‘초호화 캐스팅’에 먼저 눈길이 가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 한창이던 1942년 자바섬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빚어진 인간의 갈등과 동성애가 묘하게 뒤섞여있다.


엘리트 사관 요노이역으로 영화에 직접 출연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원래 격정적인 일렉트로닉이지만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합주로 이뤄진 어쿠스틱 버전들이 대중들에게는 더 익숙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류이치 사카모토는 1978년 일본 록음악 사상 최고의 밴드로 꼽히는 YMO(Yellow Magic Ochestra)의 멤버로 시작해 경계를 뛰어넘은 음악적 실험으로 사랑받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주제곡을 만드는가 하면 1998년에는 피아노 솔로곡 ‘에너지 플로우(Energy Flow)’로 연주곡으로는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다.

1987년에는 최근 작고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담당해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 중인두암 진단을 받았으나 복귀작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로 골든글로브상, 그래미상 후보에 다시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지난 6월 개봉한 ‘류이치 사카모토-코다’는 암 판정 이후 모든 활동을 중단했던 사카모토가 영화음악 작업을 의뢰받고 다시 소리를 찾아 나서는 5년간의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내 화제를 모았다.
/박문홍기자 ppmmhh68@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