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불신, 벌금형도 문제다] 형벌 기능은 사라진 선거범죄 판결... 100만원 놓고 당선 유·무효 '줄타기'

사법불신, 벌금형도 문제다-<상> 참을 수 없는 벌금형의 가벼움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벌금 80만원을 확정받았다. 동창회 체육대회에서 자유한국당 지지를 호소한 권영진 대구시장도 지난달 1심에서 벌금 90만원으로 직위를 유지했다.

공직선거법 제264조는 ‘공직선거법 자체를 위반하거나 정치자금법 제49조를 어겨 징역이나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받은 당선인은 그 당선을 무효 처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벌금 100만원을 기준으로 직위 박탈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관련 재판에서는 형벌의 무거움보다는 당선자 직위 상실 여부가 사실상 판단의 핵심이다. 그러다 보니 가벼운 벌금만 양산하게 되면서 벌금이 형벌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범죄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벌금형 양형기준을 정한 사실상 유일한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내 경선 매수, 기부행위 금지 위반, 선거운동기간 위반, 부정선거운동, 허위사실공표, 후보자비방 등 대다수 혐의에 대한 벌금 액수가 감경 요소 고려시 30만~300만원 사이에 걸쳐 있어 양형기준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푼돈일 수 있는 100만원을 기준으로 당선 유·무효만 가르는 재판이 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 입김이나 판사 성향 등에 따라 벌금 액수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터라 국민 신뢰를 위해 관련 제도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권 입김·판사성향따라 좌우

대부분 80만~90만원 선고 그쳐

“27년된 기준액도 이제 바꿔야”




실제로 과거는 물론 최근까지도 유독 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사범 재판에서는 80만~9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 정치인들이 많다. 선거구 주민에게 현금 10만원을 준 혐의를 받은 최수일 전 울릉군수과 의정활동보고서에 비정규 학력을 기재한 혐의로 기소된 오평근 전북도의원, 사전선거운동 등 혐의를 받은 김연식 익산시의원,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에게 인사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 전남 보성군의원 등도 10~11월 법원에서 똑같이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원칙적으로는 법관이 당선무효 기준을 고려하지 않고 형을 내려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100만원을 기준으로 줄타기하는 판결이 너무 많은 셈이다. 지난 6·13지방선거와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등 검찰이 불법 선거사범으로 수사에 들어간 당선자는 1,801명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당선무효형을 받은 인사는 드물다.

1991년 12월31일 개정 이후 27년간 줄곧 이어져 내려오는 100만원이라는 액수도 이제 조절이 필요한 사안으로 꼽힌다. 당선 유·무효를 떠나 형벌 그 자체로 피고인이 부담을 느낄 수준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선거범죄 재판에서 피선거권 박탈 여부만 부각된다면 ‘사법부가 정치적 고려를 한다’는 눈총을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선거법의 경우 당선 무효가 걸려 있다 보니 필요성이 시급해 이것만 2012년 서둘러 벌금형 양형기준을 정했다”며 “벌금 액수를 높이려면 당선 무효 기준을 입법을 통해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취재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