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의 규모가 지난 2017년 10조달러를 기록했으며 오는 2020년에는 12조3,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영국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진행한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 설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5%가 헬스케어 산업이 4차 산업혁명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수 있는 분야라고 답했다.
헬스케어 산업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아니라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세분화된 수천 개의 시장이 모여 이뤄진 산업이다. 1만여개의 질환별, 의사·환자·일반인 등 사용주체별, 예방·진단·치료·사후관리 등 단계별로 제품과 서비스의 성격이 다르다. 자동차·스마트폰처럼 탁월한 하나의 제품이 산업 전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는 없는 구조이다. 인허가 절차 등 시장 진입까지 소요기간이 길어 시장별로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산업의 특성상 한 기업이 독자적으로 헬스케어 산업의 전 영역을 독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세분화된 각 시장 내의 기업들이 협업해 높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연구개발에서 사업화까지의 과정에서 외부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고 협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헬스케어 산업 성장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은 대학·연구소·병원과의 협업뿐 아니라 스타트업 육성, 인수합병(M&A) 등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J&J는 스타트업의 초기 혁신기술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공모전인 ‘퀵파이어 챌린지’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거나 M&A를 진행했다. IBM은 머지헬스케어(의료영상분석), 익스플로리스(클라우드 기반의 의료 데이터 분석) 등을 인수해 인공지능(AI) 왓슨의 역량을 강화하고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구글과 애플도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헬스케어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확장해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조직 간 연결은 더욱 용이해지고 네트워크의 영향력은 커진다. 대규모의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플랫폼이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데이터 수집·분석·활용 등에서 표준을 만들어내게 된다. 표준화는 누가 먼저 제시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주체가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하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의 표준을 두고 극심한 표준 전쟁이 벌어졌다. 베타맥스가 VHS보다 앞선 기술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VHS가 비디오 렌털 시장의 70%를 점유하면서 최초로 표준을 제시한 베타맥스 방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인 의료 수준, 방대한 헬스케어 데이터,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기술의 변화 속도를 반영하는 제도가 함께 지원된다면 국내에서도 글로벌을 선도하는 헬스케어 그룹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