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와이브로


2005년 11월14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열린 ‘부산 APEC 와이브로 개통식’에서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은 기술자들이 흥분되는 날”이라면서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를 개발한 공로자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했다. “세계 최고 기술을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순수 국내 역량으로 차세대 이동통신기술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자랑한 것이다.

와이브로의 역사를 보면 진 장관이 어깨를 으쓱해 할 만하다. 탄생에서 상용화까지 모두 세계 최초이기 때문이다. 와이브로 기술은 삼성전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주도로 2004년 처음 개발됐다. 정통부가 한국의 10년 미래를 책임진다며 수립한 ‘정보기술(IT)839 전략’의 성과물이다. 839는 8대 신규 서비스·3대 인프라·9대 신성장동력을 의미한다. 그 당시 정부와 통신업계는 토종 기술로 무선인터넷 개발에 성공하면 IT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부산 개통식 뒤 수개월의 준비 끝에 2006년 6월30일 KT와 SK텔레콤이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2011년 상용화된 롱텀에볼루션(LTE)보다 5년이나 앞선 것. 그때 속도는 40Mbps로 3세대(3G)에 비해 3배나 빨랐다. 이후 와이브로는 4세대 통신을 선도하는 듯했다. 인텔이 기술개발에 뛰어들고 2006년 미국 통신사 스프린트도 상용화를 시작했다. 일본과 러시아 통신사도 합류하는 등 대세를 형성했다. 가입자 수도 2012년 국내에서만 104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미국·일본이 주도한 LTE가 상용화되고 4G 표준경쟁에서도 LTE에 밀리면서 미끄럼을 타고 만다. 국내 이통사가 와이브로에 투자한 돈은 2조1,000억원에 이르지만 올 1월 기준 누적 매출은 2,300억원 수준이다. 투자 대비 매출이 10분의1 정도인 셈. 가입자 수도 10월 현재 4만6,000명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호기롭던 서비스 초기에 비하면 초라하다.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를 맞아 12년간의 영욕을 뒤로하고 와이브로가 이달 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소식이다. SK텔레콤은 내년 1월1일 0시부터 이용 정지하고 KT도 16일부터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한다. 와이브로는 흑역사로 기록되겠지만 토종기술로 IT 강국을 이루겠다는 개발자들의 열정과 투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석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