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늘고 있는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아동 성범죄 예방기술을 개발했지만 규제벽에 막혀 상용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조두순처럼 재범 가능성이 높은 성범죄자에게 출소 후 거짓말탐지기를 정기적으로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나 법 조항이 없어 논의가 중단돼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과수는 ‘소아성기호증 진단장치’를 개발했지만 의료기기로 분류된 탓에 실용화가 미뤄지고 있다. 소아성기호증은 아동·청소년 등 미성년자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여기는 도착증이다. 국과수가 개발한 진단장치는 대상자에게 비키니를 입은 성인 여성과 아동의 사진을 보여주고 각각의 성행위를 묘사한 시나리오를 들려줘 음경의 변화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전문의의 정신감정이나 이미지에 따른 시선 처리 측정 등을 통해 이뤄진 기존의 방식과 비교하면 객관적인 정확도를 한층 높인 것이다.
그러나 국과수가 지난 3년 동안 공을 들여 개발한 진단장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해 의료기기로 분류돼 ‘연구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의료기기 관련 생산시설 및 임상 등에 대한 규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지난해 1,261여건으로 1년 새 20%나 증가했다.
하지만 실제로 소아성기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극히 적어 임상시험을 위한 환자 모집부터 쉽지 않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소아성기호증 환자는 지난 2013년 6명에서 2016년 13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10명에 불과했다. 아동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달리 자신이 이러한 도착증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병원을 찾는 이는 극히 드문 탓이다.
장비 생산시설을 갖추는 데도 5,000만~1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성범죄 예방이라는 높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환자 수가 적어 수익을 내기 어려운 현실에서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을 충족해 상용화에 나서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현재 이 장치는 공주치료감호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연구용에 제한해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국과수는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검사의 정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하다. 현재 출소자의 재범을 막는 장치는 전자발찌다. 전자발찌는 대상자의 위치만 파악될 뿐 행동까지 통제하는 데는 제한적이다. 이에 미국·영국에서는 정기적으로 대상자에게 성범죄 관련 거짓말탐지기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사받을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위험행동을 억제해 재범을 막는다는 것이다.
국과수 측은 “소아성기호증 진단장치를 지능검사·성격검사와 같은 심리평가 도구로 분류하거나 치료감호소에 한해 한정적인 사용승인이라도 내줄 필요가 있다”며 “성범죄 출소자의 거짓말탐지기 적용 문제는 국내에서 법적인 규제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측은 “해외에서도 소아성기호증 진단장치가 의료기기로 분류된 상황”이라면서 “다만 향후 서류 검토 과정에서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