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특허권이나 영업비밀을 고의로 침해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제도가 우리나라에서 내년 6월부터 시행됩니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지식재산 보호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특허법 및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강력하게 지식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함께 고전게임을 하면서 알아봐요.
미국에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 생태계가 생긴 이유를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가장 결정적인 요인을 꼽자면 아이디어와 기술 같은 지식재산을 지키는 울타리인 특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 문화나 경제 생태계를 들 수 있어요.
특허권은 기업이나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거나 발견하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예요. 그 기술로 만든 물건은 그 발명가나 발명가의 허락을 받은 기업만 만들 수 있게 하는 거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기업은 좋은 특허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상품을 만들어 체력을 기를 수 있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어요. 아니면 기술을 다른 기업에 판 뒤 큰돈을 벌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 있겠죠.
이때 좋은 특허는 다른 회사들이 공격해서 무력화시킬 수 없을 만큼 튼튼하면서도 시장을 넓게 보호해줄 수 있게 설계돼 있어야 합니다.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미국은 특허권 보호에 관한 조항을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헌법에 처음으로 넣었어요. 또 특허를 침해한 기업들에 대해 강력하게 벌을 줘요. 예를 들어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특허를 침해하면 손해의 몇 배를 배상하도록 해서 남의 특허를 탐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이런 제도를 특허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고 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는 미국 기업인들은 아이디어를 기술화하는 단계부터 성장을 위한 특허를 함께 준비해요. 강하고 좋은 울타리가 기업을 성장시킬 동력이라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미국 기업들은 강한 특허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아요. 다른 기업들이 슬쩍 특허를 피해갈 방법을 찾거나 소송을 걸어 무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특허는 무용지물이에요. 그래서 강한 특허를 만들어줄 최고의 전문가를 찾는 걸 우선순위로 둬요.
특허에 대한 이런 인식이 바탕이 돼서 실리콘밸리에는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엔젤 투자가, 대기업들이 서로 상생하는 지식재산 생태계를 이루고 있죠. 그 결과 경제가 발전하고 일자리도 늘어나고요.
그런데 한국은 어떨까요. 지난해 특허청에 출원된 특허 건수는 21만1,500개.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에 이어 지식재산(IP) 관련 분야에서 세계 5위죠.
하지만 겉으로는 ‘특허 강국’이지 ‘속빈 강정’이라는 말이 나와요. 왜 그럴까요. 한마디로 아이디어를 지켜줄 울타리가 별로 튼튼하고 넓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누군가 특허를 베껴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특허침해소송에서의 손해배상액 중간값은 6,000만원으로 미국(65억7,000만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습니다. 이 정도라면 누구나 ‘카피캣’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금액이죠. 양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해도 9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라 특허를 침해당해도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를 튼튼하게 만들 필요성을 못 느껴요. 특허를 튼튼하게 만들기보다는 빨리, 적은 비용으로 건수 늘리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해요. 안타깝게도 이런 시장에서 변리사와 같은 전문가는 제 역할을 할 수 없고 특허는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해요. 기업들도 고품질 특허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거예요.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 생태계가 한국에도 생겨나려면 우리도 강한 특허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징벌적 손배제 도입도 이처럼 특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고요. 그래야 아이디어를 갖고 혁신을 일궈낸 기업가가 제대로 보상을 받고 중소기업은 더 큰 나무로 성장하겠죠.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도 값싼 노동력과 남의 제품 베끼기에 의존한 개발도상국형 모델에서 혁신으로 무장한 선진국형 모델이 될 수 있겠죠.
/연유진·정가람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