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권욱기자
“변호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벌금형을 받게 해달라’입니다. 벌금은 많아야 2,000만~3,000만원 정도입니다. 하지만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라도 받으면 여러 법적인 일들이 파생돼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돈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벌금형이 부담스럽지 않은 형벌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찬희(사진)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벌금형 제도는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형 집행이라는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들 벌금형은 징역에 대한 부수적인 형벌로 생각하지만 사회적 가치가 경제 중심으로 이동한 지 오래인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형법이나 기타 특별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형사처벌상 벌금제도가 전체적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회장은 이어 “신체적인 징역형의 경우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양형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벌금은 방치하고 있다”며 “이 같은 벌금형이 전관예우라는 고리와 연결되면 아무런 감시와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벌금형과 집행유예의 갈림길에서 벌금형이 나오게 하려면 전관예우, 학교·연수원 동창 등 연고주의가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며 “그래서 벌금형이 사법불신의 또 한 가지 큰 이유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의 벌금형 제도는 피고인의 경제력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벌금형 제도가 부유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 처벌로 전락했지만 반대로 경제력이 약한 사람은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되는 불평등한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벌금형을 (경제력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부과하면 표면적으로 평등해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 평등은 아니다”라며 “ ‘형벌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는 가치가 과연 표면적이고 획일적 평등인지, 실제적 평등인지를 놓고 볼 때 실질적 평등에 가까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이에 따라 소득에 따라 벌금액이 달라지는 일수 벌금제 도입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형법이 제정될 당시와 지금의 사회는 다른 만큼 우리 사회에 어떠한 형벌(벌금형)이 적절한지는 다시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실질적 형벌 부과가 가능한 일수벌금제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법인에 대한 양벌 규정과 관련, “미쓰비시가 미국에서 성희롱 사건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해 휘청한 바 있다”며 “법인에 대해서도 소득에 비례하는, 실질적으로 범죄에 대한 억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개인과 이원화된 벌금형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법인에 대해 이원화된 양벌 규정을 운영한다면 법원과 기업이 정치권 압박에 휘둘리지 않도록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반대로 기업보다는 법인 대표가 더 많은 범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에는 법인보다 개인에게 더 많은 벌금을 물릴 수 있는 차별화된 양형기준 운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