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법원이 결국 자체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도입하는 등 사법개혁 후속추진단이 제시한 안을 상당 부분 수용했지만 사법행정 총괄권은 여전히 대법원장이 쥐는 방향으로 법원 내부 여론을 절충했다는 평가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12일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 의견’을 발표하고 법원행정처를 통해 자체적으로 마련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전달했다. 법원은 우선 그동안 문제 기관으로 지적됐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심의·의결기구인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기로 했다. 의장인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관 5명, 법원사무처장(비법관 정무직), 외부위원 4명 등 총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4명의 외부위원은 사법행정회의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추려지는데 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1인,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1인,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원노조 대표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사법행정회의 산하에는 법관으로 구성된 법관인사운영위원회도 설치해 행정권 남용을 방지하도록 했다.
사법행정 집행기구로는 판사가 보직하지 않는 법원사무처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장관급인 법원사무처장은 대법관 회의의 동의와 국회 인사청문회를, 차관급인 법원사무처 차장은 사법행정회의의 동의를 거쳐 각각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아울러 대법원장 자문기구에 머물렀던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법률기구로 격상하기로 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법원 사무국을 분리함으로써 재판 사무와 사법행정 사무를 엄격히 구분할 것”이라며 “임기 중 법원사무처 비법관화를 이루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전관예우 방지, 판결문 공개 확대, 법관임용 시스템 개선, 인사제도 개편 등 개혁 작업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사법행정권 남용의 단초가 됐던 상고심 개편 방안에 관해서도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이 같은 결론은 지난달 6일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제시한 개혁안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법행정회의 구성원이나 법관인사운영위원회 도입 등 여러 세부안이 후속추진단의 건의안과 겹친다는 평가다.
다만 사법행정회의를 심의·의결 기구가 아닌 사법행정 총괄기구로 둬야 한다는 핵심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후속추진단은 대법원장 권한을 헌법과 재판상 권한으로 제한하고 사법행정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사법행정회의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김 대법원장은 행정사무의 중심을 여전히 대법원장에 뒀다. 이는 사법행정회의가 비대한 권한을 갖는 데 대해 반발하는 법원 내 여론을 반영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실제 지난 4~10일 법원행정처가 전국 판사들과 법원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법행정제도 개선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관 79.0%를 비롯해 법원 직원 67.8%가 사법행정회의를 총괄기구가 아닌 심의·의결기구로 남겨야 한다고 답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후속추진단은 사법행정 사무 총괄 권한을 사법행정회의에 둬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김 대법원장의 안은 이를 대법원장 권한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