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이 13일 KISTEP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현 정부의 혁신성장이 과거 정부의 신성장동력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염한웅(52·사진)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이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인 ‘혁신성장’에 대해 과거 정부의 ‘신성장동력’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 정책과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심의를 하는 과학기술정책 컨트롤타워로 의장은 대통령이다.
염 부의장은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혁신성장을 위한 국가혁신체계 2019 대토론회’에서 “혁신성장에 대한 정책적인 개념과 틀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과거처럼 관이 주도해 특정 산업을 키우려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민간이 뛸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얘기다.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첨단 기술과 산업계를 지원하는 것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해 인프라 구축과 인재 양성을 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어떤 정부에서든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기술 몇 개를 선정해서 해보자’고 했는데 결국 남는 게 별로 없었다”며 “정부가 특정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육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시장이 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민간의 역량이 자라고 커갈 수 있게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때”라는 게 그의 제안이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과학기술자문회의 홈페이지 캡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인 그는 이날 혁신성장의 가장 큰 축은 ‘과학’이라며 대학 등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기초연구를 통해 원천기술과 창의적 연구인력이 생겨 혁신적인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혁신역량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R&D 생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지난 2008년 이후 논문의 질적 수준이 현저히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고급 연구인력을 (대학에서) 계속 공급받을 수 있느냐는 것은 매우 회의적이다. 미래 연구 역량은 밝지 않다”며 다소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염 부의장은 지난 6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낸 특별기고에서도 국가 R&D 정책에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당시 그는 “한국은 정부가 R&D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에 비해 학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는 부진한 실정”이라며 “R&D 사업에 대한 정부의 리더십 부재가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R&D 예산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24%(2016년 기준)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이지만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 한국이 새롭게 등록한 특허 수는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이지만 상업화로 이어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김상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국가 혁신관리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정부 R&D 장기 로드맵, 혁신주체 간 연계, 연구자 중심 R&D 시스템, 중소기업 R&D 혁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전문성·기능 강화에 역점을 두고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과학기술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며 “7월 ‘국가 R&D 혁신방안’에 이어 국가 혁신체계 고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