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다산콜센터 상담사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센터에서 전화민원을 처리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띠링띠링.’
‘응대 주의’라는 경고 문구가 모니터에 떠오름과 동시에 ‘콜’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서울시 산하 민원창구인 120다산콜센터 민원지원팀 상담사 김모씨의 얼굴에 일순간 긴장한 기색이 감돈다. “내가 오전에 접수한 거 불법주정차 그대로 다시 해주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내 말 안 들려요? 상담원이 뭐 이렇게 상담해.” 수신상태가 좋지 않았던지 상담원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네, 고객님. 불법주정차 건 다시 접수해드리겠습니다.” “정상이 아냐, 정상이. 들리게 얘기하라고요. 왜 이 상담원만 이래. 일 처리 좀 정확하게 하세요.” 민원인은 고함과 함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와중에도 김씨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민원처리를 마치고 시스템상에 ‘강성’으로 민원 종류를 분류해 기록했다.
지난 2007년 9월 문을 연 120다산콜센터는 상담사 직접고용, 악성민원전담팀 운영 등 각종 선진 제도를 도입해 콜센터 업계에서 롤모델로 자리 잡은 곳이다. 다산콜센터에서는 420명의 상담사가 매일 1만6,000~1만7,000통의 전화민원과 2만통의 문자문의를 처리하고 있다. 그간 쌓인 표준 상담 데이터베이스(DB)만 1만1,046건에 달한다.
일일체험을 위해 콜센터를 찾은 기자는 악성민원인 상담을 전담하면서 일반 상담을 원활하게 하도록 하는 역할인 민원지원팀 상담석에 배석했다. 문제 민원이 접수되면 5명 이상의 직원들이 1회성 여부와 문제 정도를 검토해 악성민원인으로 등록할지를 검토한다. 이날 민원지원팀에는 소리를 지르고 상담원의 태도를 문제 삼는 유형부터 정확한 요구사항 없이 개인 불만이나 하소연을 수십분간 지속하는 유형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악성민원이 반나절 동안 이어졌다. 다산콜센터는 문제 민원을 ‘악성’으로 분류되는 △성희롱 △폭언 △욕설과 ‘강성’으로 분류되는 △하소연 △억지주장 △수위 낮은 폭언으로 나눈다. 그 밖에 최근 늘어나는 ‘특이민원’ 형태도 있다. 한 상담원은 “폭언을 하면 전화가 끊기는 것을 아니까 반복적, 고질적으로 장콜(긴 전화)을 접수하는 등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며 “하루 30통씩 한 달에 800개의 민원을 접수하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120다산콜센터에서 상담사들이 전화민원을 처리하고 있다./송은석기자
서울 동대문구 120다산콜센터 입구에 설치된 게시판에 친절한 고객서비스를 다짐하는 글귀 등이 붙어 있다. /송은석기자
다산콜센터는 민원지원팀을 비롯해 악성민원에 대한 대응체제를 2012년부터 구축해왔다. 폭언이 발생하면 법적 조치를 예고한 다음 중지를 요청하고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전화를 콜센터 쪽에서 먼저 종료한다. 성희롱의 경우는 법적 대응을 예고한 다음 전화를 즉각 종료할 수 있게끔 보장한다. 고객 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두며 선을 넘는 민원에도 친절하게 응대하도록 했던 과거와 달리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한 ‘끊을 권리’가 어느 정도 현장에 정착된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상담원들은 한목소리로 “갑질하는 고객은 과도한 친절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신용카드나 통신사 등 사설 콜센터에서 누렸던 서비스에 젖어 ‘너희는 왜 불친절하냐’는 식의 항의를 받기도 하는데 다산콜센터에는 ‘재량껏’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말했다. 상담원이 업무 재량 밖의 민원까지 들어주다 보면 책임 소재도 모호해지고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담사 양모씨는 “상담사 일을 하면서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갖가지 욕은 다 들어봤다”며 “‘내가 내는 세금으로 너희가 월급을 받는다’는 고압적인 태도가 막말과 갑질을 부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씨는 상담 5~6년 차에 스트레스로 이명 증세를 겪기도 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생리불순·두통·부정맥 같은 신체적인 부작용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콜센터 상담사의 인권 보장과 친절한 고객서비스 사이에서 적절한 응대 합의점을 찾되 욕설이나 성희롱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고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산콜센터는 상담원에게 폭언을 퍼붓는 등 수위가 높은 악·강성 민원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95명의 악성민원인에 대해 형사 고소·고발 조치를 했고 이를 통해 악성민원을 90% 이상 감소시켰다.
최갑영 다산콜재단 기획관리본부장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특이민원을 별도 관리하고 고소·고발을 통해 상담사를 보호하겠다”며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인공지능 메신저 챗봇을 운영해 민원 대기시간을 줄이고 전문적인 상담이 가능하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최 본부장은 이어 “민원인들도 상담사가 자신의 부모·형제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