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아버지 부시 '獨통일 리더십'의 함의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佛.英.소 등 주변국서 반대할 때
서독 신뢰바탕 앞장서 설득
韓도 강력한 외부 지지세력 필요


지난 11월30일 미국의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제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1989년1월~1993년1월)이 향년 94세로 서거해 7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 옆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그는 18세라는 최연소 미 해군 뇌격기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전해 바다에 추락한 후 살아남은 전쟁영웅이었고 연방 하원의원, 주유엔대사, 중앙정보국(CIA) 국장, 부통령, 대통령 등 화려한 경력을 거쳤으며 바버라 여사와 73년을 해로해 최장수 결혼생활을 기록한 미 대통령이었다. 그는 정치명문가의 수장이기도 했다. 장남 조지 W 부시는 아버지에 이어 제43대 미국 대통령이 됐고 차남 젭 부시도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내고 대통령 경선에 출마했다. 그럼에도 그가 큰 족적을 남긴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정치명문가 출신이어서도 아니고 화려한 경력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닦은 기초 위에서 냉전종식을 마감했고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독일통일을 견인하고 소련과의 핵군축 협상을 이끈 외교·안보의 달인이었다.

1989년 12월 당시 부시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에 정박한 소련 여객선에서 역사적인 ‘몰타 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두 정상은 군사대결·군비경쟁·이념대립 등을 청산하기로 약속하고 ‘냉전 종식’을 선포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1956년 헝가리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화 운동을 무력으로 짓밟는 근거로 삼았던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고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약속했다. 독일통일, 동구 공산권의 붕괴, 소련연방 해체 등이 이어졌다. 이렇듯 부시는 냉전에 마침표를 찍은 대통령이었다. 이어서 1991년 그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몰아낸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을 개시했다. 이 전쟁에서 미군은 과학병기들을 선보이면서 42일 만에 승리를 선언함으로써 ‘유일초강국 시대’를 개막했다.


독일통일 과정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도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재통일을 반길 주변국은 없었다. 그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이태리의 줄리오 안드레오티 총리 등을 설득했으며 폴란드를 안심시키고 소련의 반대를 불식시켰다. 동맹국 서독을 신뢰했던 부시 대통령의 통일외교가 없었더라면 독일통일을 최종 승인한 1990년 9월12일의 역사적인 ‘2+4회의’, 즉 동서독과 4대 전승국 회의는 열리지 못했을 것이며 1990년 10월3일의 독일통일은 연기됐거나 무산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전략핵무기 감축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1991년 7월 전략핵감축조약(START)을 체결했고 1993년에는 러시아의 니콜라예비치 옐친 대통령과 제2차 전략핵감축조약을 체결해 양 대국의 전략핵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후 2002년 아들 부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체결한 공격핵무기감축조약,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서명한 신전략핵감축조약(New START) 등의 후속 핵군축이 이어졌다. 그가 주도한 핵군축에는 한반도도 포함됐다. 1991년 부시-고르바초프 선언에 따라 주한미군 전술핵이 철수됐고 뒤이어 남북한 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등이 성사되면서 남북 간에는 잠시나마 훈풍이 불었다.

12월5일 워싱턴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 한국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3,000여명의 내외 조문객들이 참석했는데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추도사 도중에 “당신은 조국과 국민에 성실하게 봉사한 최고의 대통령이었지만 자식들에게도 최고의 아버지였다”고 말하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던 장면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남들이 느끼지 못한 감회들이 교차했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독일통일을 성사시킨 그의 업적을 회고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도 확고한 외부 지지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또한 전·현직 대통령 부부들이 모두 장례식에 나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봤을 것이다. 대선의 앙금이 남은 도널드 트럼프 부부와 빌 클린턴 부부가 악수를 나누지 않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지만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전 대통령들이 수난을 겪거나 감옥에 가는 질곡의 정치역사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는 이만하면 부러워할 만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부시 대통령은 한 시대의 세계 역사를 만들고 한국인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남기면서 미국 국민과 세계인의 곁을 떠났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