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개발의 최신 기술 흐름은 화학적 약물로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기보다는 환자 면역세포가 암 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이 같은 항암제를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미 환자의 면역체계를 견딜 수 있는 암세포에 대해선 약효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난제를 한국 과학계가 풀었다. 암세포의 내성을 이겨내는 방법을 밝혀냈다.
발견의 주인공은 차의과학대학교 김찬·전홍재 교수 및 이원석 박사 연구팀이다. 한국연구재단의 17일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항암바이러스와 면역항암제를 함께 사용해 암의 내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기존의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20~30% 정도에게만 효과를 냈는데 분당차병원 연구팀의 연구결과 항암바이러스와 면역항암제 2종(PDI, CTIA4)을 동시에 사용해 보았더니 치료 효과가 크게 높아졌다. 실험군 환자의 40%에서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약물 투여를 마친 뒤에도 치료효과는 장기간 계속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김 교수는 “이번 전임상 연구 결과를 통해 면역 항암 치료 내성을 이길 기반을 마련했다”며 “병용 요법이 효과적인 암 치료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항암바이러스 요법은 마치 백신주사를 맞는 것과 메커니즘이 비슷하다. 일반 백신 요법은 독성을 약화시키킨 바이러스를 체내에 주입해 우리 몸이 해당 바이러스에 맞설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분당차병원 연구팀은 우선 유전자를 조작한 바이러스를 종양에 투여했다. 그 결과 종양 미세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 면역관문억제제에 대한 반응이 극대화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면역 신호전달체계도 변화됐다. 여기에 더해 면역관문억제제를 병용했더니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양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간암과, 대장암 등에서도 일관된 치료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12일 미국 암학회(AACR)의 주요국제학술지인 ‘클리니컬 캔서 리서치’에 게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기초연구사업(신진연구) 및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을 통해 이번 연구를 지원했다.
국내 제약회사 중에선 신라젠이 개발한 항암바이러스가 이와 비슷한 개념의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회사가 개발해 임상시험 중인 항암바이러스제 ‘펙사벡’은 체내 주입시 암세포에 대한 면역유도 물질을 형성하며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이를 면역항암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 효과가 증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