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호재기자.
12일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호재기자.
“통합 없는 통일은 정치적 허상입니다. 스포츠 민간 교류는 통합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김경성(59) 사단법인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은 민간 스포츠 교류를 이끄는 대표적 인물이다. 12년간 남북 유소년축구 경기 개최 등으로 교류를 펼치며 대북 신뢰를 쌓아온 김 이사장은 최근 경기 고양의 협회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남북 스포츠 교류의 경제적·사회적 효과에 관해 역설했다.
김 이사장은 먼저 남북 간 민간 교류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통일은 전쟁이나 국민투표로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지금 필요한 정부의 역할은 평화를 유지하고 남북 주민들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고 거기에는 민간 교류를 통한 통합이 필수”라고 했다. 스포츠와 경제 교류를 확대하면 통일 전에도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지고 남북한 시장도 함께 커짐으로써 장래의 통일 비용이 확 줄어드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스포츠 교류의 경제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김 이사장은 축구를 예로 들었다. “첫째는 북한 선수의 남한 프로팀 영입에 따른 우리 기업의 북한 진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조선중앙과 스포츠 등 2개 채널이 있을 만큼 스포츠의 인기가 높습니다. 메이저리그 ‘류현진 효과’처럼 북한 선수를 영입한 해당 기업은 북한 시장을 선점하는 게 되죠. 둘째는 남북 리그 통합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리그 통합은 일자리 100만개 창출과 K리그 부흥 효과가 있습니다.” 이어 그는 “도로·철도 연결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관광만 허용되면 북한 원정 응원으로 북한 시장도 커진다”며 스포츠 통합은 스포츠라는 모자를 쓰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부담이 크지 않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사회주의 국가에서 스포츠는 정권 유지와 선전의 강력한 수단이다. 북한도 체육 영웅을 성골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우수 자원이 끊이지 않는다”고 북측 스포츠 시장의 잠재력과 매력을 분석했다.
김 이사장에게 체육 교류는 우연으로 시작돼 사명으로 발전했다. 보험 등의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그가 2004년 세계적인 스포츠 훈련지로 유명한 중국 윈난성 쿤밍의 초대형 스포츠센터 임대 운영을 맡은 게 인연이 됐다. 근방에서 북한 축구선수단이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무상 훈련을 제안했다. 수익을 위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그곳에서 훈련하던 한국과 여러 나라의 유명 팀들이 북한과의 경기를 원했기 때문. 추후 에이전트 권한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 핵실험 등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자 된서리를 맞았다. 임대 운영은 부도로 이어졌으나 스포츠 교류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됐고 2006년 협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후 올 8월 평양과 지난달 춘천에서 각각 제4·5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개최하기까지 남북한과 중국에서 모두 22차례에 걸쳐 매년 남북 축구 교류를 이어왔다. 양궁·탁구·복싱·골프·마라톤 등으로 교류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스포츠가 이산가족 상봉이나 고위급 회담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접근 수단이라는 사실은 평창동계올림픽으로 극명하게 입증됐다. 평창이 없었다면 판문점선언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스포츠는 유엔(UN) 정신이자 올림픽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평창올림픽 이후 활발한 정부 주도의 단일팀 결성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내비쳤다. 정치적 관점에서 때가 되면 논의하는 식의 단일팀은 경기도 망치고 여론도 망칠 수 있다는 그는 “교류와 지원으로 북한 스포츠의 경기력을 높여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 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종목 위주로 해야 하고 자칫 남북 선수 모두의 꿈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살펴 대안과 보상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협회의 내년 사업 중 눈에 띄는 것은 8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 평양 개최 추진이다. 김 이사장은 “골프장 점검과 여건 진단을 거쳐 조만간 북측과 합의서를 쓸 것”이라고 전했다. 성사된다면 2005년 평화자동차 평양여자오픈 이후 14년 만의 두 번째 개최가 된다. 최대 역점 사업은 중국과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국제축구대회에 남북 유소년 단일팀을 참가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을 ‘22번의 만남, 이제는 하나로’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로 제작, 세계적인 국제영화제에 출품하고 이후 남북 TV 채널에서도 방영할 계획이다. 이외에 5월 원산 국제유소년축구대회 개최, 4월 평양 만경대상 국제마라톤대회 남측 선수·동호인 참가 지원 등도 확정된 사업들이다.
2008년 평양에 35만㎡ 부지 무상 사용허가를 주고 2009년에는 능라도에 ‘김경성 초대소’를 제공하는 등 북측의 김 이사장에 대한 신뢰는 대단하다. 그는 “사용허가를 받은 부지에 종합 스포츠타운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 기업의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이라면서 “남북관계의 강줄기를 바꾸기가 불가능한 현실, 그리고 정권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작은 도랑이라도 파는 심정으로 민간 교류를 실천해온 분들이 제대로 평가받고 민간 교류 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기를 바란다”는 소망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