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오른쪽) 감독과 진주.
2016년 초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에 재학 중이던 한 여대생이 베트남어 연습을 하기 위해 베트남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그저 전공어를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올린 영상은 ‘나비효과’(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일으키며 이 여대생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그가 올린 영상은 SNS를 타고 베트남에서 커다란 이슈가 됐고, 이후 베트남 방송제작사의 제안으로 ‘베트남판 히든싱어’에 출연해 우승을 하면서 가수로서의 운명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베트남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베트남 신데렐라’ 진주(본명 신진주·24·사진) 얘기다. 한국에서 먼저 데뷔한 이후에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그동안의 K팝 스타들의 스토리와는 정반대인 까닭에 진주의 베트남에서의 활약은 더욱 눈길을 끈다. 현재 베트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진주가 서울경제신문과 서면인터뷰를 가졌다.
진주는 대체 베트남에서의 자신에 대한 높은 인기가 여전히 신기하다고 했다. “방송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길거리에 나가면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서 요즘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요. 제 목소리랑 발음이 특이해서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택시를 타거나 카페를 가거나 하면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고, 사인해 달라고 해주셔서 참 신기하고 감사해요.” 그는 이어 “앞으로 베트남에서 더 많은 곡들을 발표하고 꾸준하게 가수로서 음악 활동을 할 생각인데 베트남 음악 차트에서 1위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며 “한국인 가수로서 베트남에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고, 박항서 감독님과 같이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 이바지해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진주는 베트남 국영 방송국 VTV의 음악 프로그램을 비롯해 HTV의 퀴즈쇼 등에 출연하고 있으며, 베트남 음악 차트 프로그램인 ‘브이 하트 비트 위클리’(V Heart Beat Weekly)의 진행을 맡고 있다. 그는 올해 10월 말에는 데뷔곡 ‘Gia Vo Noi Yeu Em Di’(한국어 버전 : 꽃잎)을 베트남과 한국에 동시 발매를 했다.
베트남에서 진주가 이 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진주는 자신의 목소리와 베트남어를 구사하는 한국 여성에 대한 호감 등을 꼽았다. “일단 제 베트남어 발음과 목소리가 베트남사람이 듣기에 굉장히 특이하고 귀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한국인 여자가 베트남어를 전공해서 베트남어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특이해서 베트남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베트남에서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저를 좋아해 주시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베트남에서 거주하고 있는 진주에게서 베트남 젊은이들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이머징 국가인 베트남의 생생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베트남 젊은 친구들은 굉장히 개성이 넘치고 자유분방하면서 트렌드에 예민한 것 같아요. 유행을 따라잡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패션과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K팝과 K뷰티에 대해 오히려 한국인인 저보다 더 많이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예를 들면 한국 아이돌 가수가 신곡을 내면 그 다음날 바로 댄스커버 영상을 찍어서 올린다든가 하는 것들에 굉장히 놀랐어요. 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SNS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활발하게 사용되고 굉장히 많은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고 공유되는 것 같아요.”
그는 베트남을 보면서 한국을 생각한다고 했다. “베트남의 문화적 정서는 한국인과 비슷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가족을 중요시한다든지, 학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든지 등 공통점이 있죠.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베트남에서 학생들이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면 학교 주위에 오토바이 수백 대가 몰려 있어서 길이 막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데,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들 하교 시간에 맞춰서 기다렸다가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어요. 학원 앞에서도 마찬가죠. 우리나라와 굉장히 비슷한 민족성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베트남 사람들의 단결력은 거의 세계 최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베트남 선수단이 출전하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승패에 상관없이 거리로 모여 베트남 국기를 들고 응원을 하는 베트남사람들을 볼 때면 마치 2002년도 월드컵 때의 한국을 보는 것 같았고 우리나라 못지않게 열정이 넘치는 나라라는 것을 느껴요.”
베트남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서인 정(情)이 발견된다는 점도 베트남을 좋아하는 이유로 꼽았다.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따뜻한 정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발전을 많이 했고 개인주의가 많이 자리 잡아, 이전의 이웃 간의 정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는데, 베트남은 아직은 사람과 사람 간의 정과 이웃에 대한 관심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또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것 같아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항상 나누어 먹고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해요. 그래서 항상 저를 가족처럼 챙겨주는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그 힘으로 계속 베트남에서 방송활동을 하며 힘든 순간들이 와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이어 베트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베트남이 정말 많아서 고르기 어렵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껌승(Com Suon)이에요. 또 베트남식 전골인 러우(lau)도 요즘 자주 먹는 음식 중 하나예요.”
마지막으로 진주는 현재 베트남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려줬다. “박항서 감독님의 현지 인기는 웬만한 한류스타 못지 않아요. 거리에 나가면 택시나 전광판에 박항서 감독님이 찍으신 광고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베트남 축구 경기가 있을 때마다 박항서 감독님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포스터들이 페이스북에서 베트남 친구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거의 영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는 이어 박항서 감독을 만났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박항서 감독님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올해 초에 U23 축구 경기에서 베트남 선수단이 준우승했을 때 제가 선수단 교류회에 참석해 박항서 감독님께 아리랑을 불러드렸어요. 그때 제가 노래를 부르고 무대 위에서 내려왔을 때 감독님께서 직접 저한테 다가오셔서 악수를 해주시면서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자리에 있던 베트남 기자분들이 그 장면을 보고 감동 받으셨다고 기사도 내주시고 영상도 찍어 주셨죠. 그때가 저로서는 굉장히 영광스럽고 다시 한 번 박항서 감독님이 존경스러웠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