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워치] 중년아빠의 육아일기亂…그 어떤 스펙보다 위대한 경력

빠지는 두발 관리·틈틈이 재테크
취미 줄이고 피부 등 외모 가꾸기
교육비 증가에 경제적 압박 커지지만
퇴근 후 품에 안긴 아이보며 삶 위안
日은 '출생~19세' 의료비 부담 없어
韓도 '만혼부부' 위한 지원 늘었으면


“40대 중반이 되니 몸은 피곤하고 마음도 초조한데 회사에서는 여기저기서 치이고 여러모로 힘겹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가족, 올해 어린이집에 들어간 딸 때문이죠. 딸 키우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회사원 정규철(46)씨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 이제 네 살 된 딸을 둔 ‘늦깎이 아빠’다. 틈날 때마다 육아에 대한 공부와 재테크 교육을 받으면서 바쁘게 생활하는 등 고충은 많지만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현관문으로 달려 나오는 딸을 품에 안는 것이 그의 낙이다.

늦은 결혼으로 자녀도 늦게 갖게 된 4050 아빠들. 모든 부모의 희망이 자녀겠지만 특히 4050 아빠들에게 늦둥이 같은 어린 자녀에 대한 애착은 더 크다. 이들은 일찍 결혼해 훌쩍 큰 자식을 두거나 아니면 비혼(非婚)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는 주변 친구나 동료들에 비해 몸과 마음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사는 재미는 바로 자녀들이다.

늦깎이 아빠 서상원씨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정우군, 부인 김현진씨와 주말을 맞아 나들이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정욱 기자

직장인 서상원(44)씨는 “결혼도 늦게 했는데 아이도 늦게 가져 내년에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학부모로서 책임감도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며 “아들이 생긴 후로는 주말에 즐겼던 취미생활도 자제하고 아들과 최대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섯 살 딸과 아홉 살 아들을 둔 자영업자 유광현(51)씨는 요즘 외모 관리에 한창이다. 아내에게 “여자 생긴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가 얼굴 가꾸기에 나선 것은 자식 때문이다. 가끔 어린이집에 딸을 데려다 주는데 한번은 어린 딸이 “아빠는 늙어서 창피해. 어린이집에 오지 마”라고 말해 무척 서운했기 때문이다. 이후 유씨는 동네에서 잘한다는 미용실을 찾아 젊어 보이게 머리도 다듬고 가끔 피부 마사지까지 받는다. 평소 정장을 할 일이 없지만 어린이집에 갈 때는 일부러 양복에 넥타이도 맨다.


유씨는 “딸이 ‘다른 아빠들은 양복 입고 친구를 데리러 오는데 그 아빠 멋있다’고 해 나도 멋있게 보이고 싶어 어린이집에 갈 때는 잠시 정장을 한다”며 “주변 사람들이 어린이집 때문에 잠깐 정장을 하는 게 귀찮지 않으냐고 묻지만 이런 것도 아이 키우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어린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그 아이들을 위해 일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4050 아빠들은 남다른 행복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4050 아빠들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학예회 등에 참석하는 부모, 특히 아빠들 가운데 여느 30대에 비해 늙어 보이는 게 의식되고 이는 아이들에게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40~50대는 자식뿐 아니라 부모도 부양해야 하는 나이여서 경제적 압박도 만만치 않다. 또 요즘은 과거처럼 ‘개구쟁이라도 좋다. 씩씩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는 시대도 아니어서 교양 있는 자녀로 키우기 위한 부모의 노력에서 아빠의 역할도 크다. 이런 점에서 4050 늦깎이 부모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는 게 당사자들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40~50대에 미취학 자녀를 두는 아빠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우선 이들이 육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직장 등에서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강제 시행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자는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출산휴가, 남성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고 강의한다”며 “그러나 사실 나는 직장에서 눈치가 보여 내 아이가 어렸을 때 육아휴직 신청을 꿈도 못 꿨는데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의료비 지원 등 만혼부부를 위한 경제적 도움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 우선 자녀의 의료비 부담은 없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관련 비용(병원 진료비·출산비, 기본 육아용품) 등이 모두 지원되며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모든 의료비를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만 14세에서 19세까지 지원되는 연령은 다르지만 의료비 지원시기에는 병원비를 낼 필요가 없다. 감기 등 가벼운 질병을 비롯해 소아암 등 중증질환으로 치료를 받아도 모든 의료비가 지원된다.

일본의 친척집을 가끔 방문하는 양윤규(47)씨는 “일본은 자녀 의료비 부담도 없고 이 외에 자녀를 키울 때 여러 가지 지원이 많이 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한번 입장하는 데 몇만원 하는 놀이공원 같은 곳이 일본은 동네마다 있는데 대부분 무료로 운영돼 일본 아빠들이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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