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니’의 자율주행차 /광저우=김창영기자
“언제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빠른 반복 학습을 무기로 스타트업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중국 최대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인 포니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펑은 지난 9월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박람회 연단에서 구글 자율주행 자회사인 웨이모에 선전포고를 날렸다.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 기업’인 미국 구글의 자율주행차 계열사 웨이모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추월할 수 있다고 공언한 것이다.
포니는 포니·위라이드·로드스타·모멘타 등 중국 주요 자율주행차 기업 4곳 중 자본과 기술력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 수석 개발자로 일한 펑 CEO는 복잡한 도심에서 주행이 가능한 4단계 자율주행차를 만들겠다며 2016년 12월 실리콘밸리에서 포니를 창업했다. 국제적으로 자율주행차는 1~5단계 등급을 갖고 있고 숫자가 높을수록 어려운 단계다.
2017년 12월 난사에 글로벌 본사를 세운 포니는 중국 현행법상 허용된 자율주행 최대 단계인 ‘T3(3단계)’ 등급을 따낸 뒤 난사 지구에서 도로주행 테스트를 시작했다. 중국에서 T3 등급을 받은 곳은 바이두·텐센트·디디추싱·포니 등 4곳에 불과하다. 올해 초부터 7개월 만에 2억1,400만달러(약 2,406억원) 펀딩에 성공한 포니는 회사가 곧 유니콘기업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포니와 더불어 광저우 양대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위라이드 역시 4단계 자율주행차 개발에 한창이다. 바이두의 자율주행 부문 수석 연구원 출신인 토니 한은 지난해 4월 실리콘밸리에 위라이드 전신인 징치 본사를 세운 뒤 광저우를 글로벌 거점으로 삼았고 르노·닛산·미쓰비시연합 등으로부터 투자금 5,700만달러를 확보했다. 지금까지 약 3,000명이 위라이드의 자율주행차를 시승했으며 누적 주행거리는 7만㎞에 달한다. 기술 국산화에 성공한 포니는 차량 한 대당 개발비용을 40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대폭 줄였고 자율주행차 보유 대수를 현재 20대에서 내년 500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바이두·텐센트 등 IT 공룡들 사이에서 스타트업들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중국 9개 성 가운데 인구 기준 최대인 광둥성은 광저우·난사 등을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로 지정했고 올해 7월에는 인공지능산업을 오는 2025년 1,500위안 규모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의 ‘광둥성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지방정부는 실리콘밸리로 날아간 자국 기업의 국내 유턴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인재유치를 위해서는 신(新)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는 셈이다. 차이자오양 광저우 난사 지구 서기가 미국에서 포니의 자율주행차를 시승한 뒤 포니의 글로벌 본사를 난사에 유치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포니에 550㎢ 규모의 난사 지구 전체를 자율주행 테스트 지역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위라이드 역시 100실 규모의 기숙사와 하이주 지구 일부를 자율주행 테스트 지역으로 내어준다는 지방 정부의 ‘러브콜’을 받고 광저우에 해외 거점을 잡았다.
시진핑 주석의 역점사업 ‘중국 제조 2025’를 달성하기 위해 중앙 정부가 자율주행에 들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 제조 2025는 10년씩 3단계에 걸쳐 제조업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2045년 첨단산업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프로젝트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3월 항저우·닝보·사오싱 등 저장성 핵심 도시 3곳을 연결하는 ‘지능형 슈퍼 고속도로’를 2021년까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총 길이 161㎞, 6차선으로 이뤄진 고속도로 가운데 1~2개 차선을 자율주행 전용 도로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곳에서 자율주행차와 전기차는 시속 100마일(160㎞)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중국과 달리 국내 자율주행 산업은 걸음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10월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촉진 및 상용화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답보 상태다.
관련 법 제정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국내 제조사들과 투자자들이 투자를 외면하는 사이 ‘한국의 웨이모’를 꿈꾸는 스타트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제자들과 설립한 자율주행차 기업 토르드라이브는 2015년 설립된 지 2년 만인 지난해 미국으로 거점을 옮겼다. 서울대 캠퍼스와 여의도에서 자율주행 테스트를 마쳤지만 각종 규제에 부딪히면서 상용화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자율주행 택배 테스트를 밟아야 했다.
/광저우=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