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컬처 'B·L·O·W'] 2018 영화계에 불어닥친 바람

보헤미안 랩소디, 음악영화사상 최다관객…완벽한타인 등 작은영화 활약
노래부르는 싱어롱 상영 등 관람문화 변화…미투에 영화계 잇단 파문도

6년째 연간 관객수 2억명 수준의 안정기에 접어든 시장인데도 올 한 해 영화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연초부터 불어닥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으로 영화계가 들끓었고 마블 히어로물이 불을 당긴 시리즈물 열풍 속에 1·2편 연속 쌍천만을 기록한 영화 ‘신과 함께’가 국산 월드 시리즈물로 자존심을 지켰다.

여름·추석 등 성수기 시장을 목표로 내놨던 제작비 100억~200억대 대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반면 비성수기(low season)를 노린 작은 영화(low budget)들의 반격이 이어진 한 해였다. 특히 비성수기 개봉작 사상 최대 성적을 낸 ‘보헤미안 랩소디’는 세대공감을 통한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극장 안에선 참여형 관람 문화를 정착시켰고, 극장 밖에선 책과 음반부터 TV 프로그램까지 ‘퀸앓이’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상품이 속출했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분노의 연대가 만들어낸 바람부터 전 세대가 어깨 걸고 만들어낸 공감의 바람까지 올 한 해 영화계에 불어닥친 바람을 ‘B·L·O·W’라는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제공=20세기폭스코리아

◇B=Bohemian Rhapsody again: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퀸의 일대기와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은 올해 영화계 최고의 이슈였다. 국내 개봉 외화 중 누적 관객 3위, 음악영화 사상 최대 스코어인 880만 관객 동원 신화를 만들어낸 것은 세대공감이었다. 부적응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의 음악,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마음 쉴 곳 없는 밴드가 40년이 지난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실제로 CGV리서치센터 분석에 따르면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관람객은 이달 초까지 20대가 32.5%, 30대가 25.9%, 40대가 24.4%, 50대가 13.6%로 나타났다. 재관람률은 이 기간 ‘톱 10’ 평균인 3.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8.1%에 달했다.

이미 퀸 신드롬은 극장 밖,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뻗어 나갔다. ‘퀸망진창’(퀸과 엉망진창의 합성어), ‘퀸알못’(퀸을 알지 못하는 사람), ‘퀸앓이’(퀸에 열광하는 팬) 등 인터넷 신조어가 생겨났고 각종 음원 차트에는 퀸의 명곡들이 진입했으며 지상파 방송에서는 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부터 퀸이 출연한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까지 긴급 편성에 나섰다.

총 제작비 58억원의 중급 영화 ‘완벽한 타인’은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기록을 세웠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L=Low Season·Low budget:비수기·작은영화의 반격

올 한 해는 대마불사 신화가 철저히 무너진 해였다. 연상호 감독의 ‘염력’, 김지운 감독의 ‘인랑’, 조승우의 스크린 복귀작 ‘명당’, 손예진과 현빈을 투톱 주연으로 내세운 ‘협상’ 조선시대 좀비물 ‘물괴’ 등 스타 감독과 정상급 배우를 내세운 대작들이 성수기 개봉에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반면 작은 영화들의 반전 있는 흥행이 이어졌다. 연초에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리틀 포레스트’를 시작으로 하반기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는 ‘완벽한 타인’ 등 스펙터클 대신 드라마를 강조한 리메이크 작품들이 돌풍을 일으켰고 영화 ‘소공녀’ ‘미쓰백’ ‘허스토리’ 등 작지만 내실 있는 저예산 여성영화가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장기 상영을 이어갔다.

21세기형 영화 문법을 보여준 영화 ‘서치’ /사진제공=소니 픽쳐스

예상 밖의 흥행을 기록한 또 한 편의 영화는 ‘서치’다. 비수기에 개봉한데다 개봉 전까지 관객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영화는 독특한 스타일과 실험적인 문법으로 입소문을 탔고 누적 관객수 300만에 육박하는 반전 기록을 세웠다.

체험형 공포영화 시장의 시작을 알린 ‘곤지암’ /사진제공=쇼박스

◇O=One more time:N차 관람부터 싱어롱까지 새로워진 관람문화

관람 문화의 변화도 눈에 띄었다.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뮤덕(뮤지컬 마니아를 이르는 은어) 문화가 영화관에선 N차 관람 열풍으로 정착했다. CGV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개봉작 가운데 서정적인 미장센과 감미로운 음악이 돋보였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재관람율은 9.1%에 달했고 지난달 개봉한 BTS 콘서트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 무비’는 무려 10.6%에 달하는 재관람율을 기록했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이유로 꼽히는 ‘싱어롱’ 상영은 체험형 관람을 선호하는 20·30대 젊은 관객의 극장 진입을 이끌어냈다. ‘퀸’을 새로운 복고, 이른바 ‘뉴트로’로 받아들이는 20·30 관객에 힘 입어 이 영화의 재관람률을 8%를 기록했다.

체험형 관람을 선호하는 관객층이 두터워지면서 특별상영관들도 활기를 띄었다. 총제작비 24억원의 초저예산 영화로 비수기 시장을 공략했던 공포영화 ‘곤지암’이 3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스크린X로 체험형 공포영화 시장의 시작을 알렸고 ‘해리포터’, ‘그래비티’, ‘아바타’ 등 옛 영화들이 관객 요청으로 오감체험형 4DX영화로 재탄생, 관객들과 재회했다.

성폭력 파문에 휩싸인 김기덕 감독. /연합뉴스

◇W=Women‘s Anger·World series 미투와 월드 시리즈물 강세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문화계 성폭력 폭로는 충무로까지 번졌다. 김기덕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조재현이 여배우를 폭행하거나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고 ‘천만요정’이라는 별칭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품 조연 오달수가 성추행 의혹이 잇따르며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어벤져스부터 아쿠아맨까지 올 한 해는 할리우드 시리즈물의 강세가 이어진 한 해였다. 올해 연간 박스오피스 순위를 보면 시리즈물이 단연 강세였다. ‘신과함께-인과연’(1위), ‘어벤져스: 인피니티워’(2위), ‘미션임파서블: 폴아웃’(3위), ‘신과함께-죄와벌’(4위), ‘쥬라기월드: 폴른 킹덤’(5위), ‘앤트맨과 와스프’(6위), ‘블랙팬서’(8위) 등 10위권에 프랜차이즈 영화 7편이 포함됐다.

1, 2편 쌍천만 흥행기록을 세우며 한국 시리즈물의 부활을 알린 ‘신과 함께’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시리즈물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기 쉽다는 점에서, 동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랜차이즈물 제작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활기를 띄고 있다.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 한국영화 가운데선 ‘신과 함께’가 1·2편 연속 쌍천만 기록을 세우며 월드 시리즈물 트렌드에 가세했다. 이 작품은 대만, 태국 등 아시아권 동시 개봉으로 한국영화의 영토를 확장한 것은 물론 한국형 판타지물의 가능성을 확인한 작품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아저씨의 박훈정 감독이 워너브러더스코리아와 함께 시리즈물 제작을 목표로 내놓은 ‘마녀’ 역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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