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제약사인 A사는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달력을 만들어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건강보험공단·거래병원 등 관계기관에 배포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내년 달력을 만들지 않았다. 지난 2016년 11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정부 기관과 공기업이 달력을 받지 않기로 한 영향이 컸다. A사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인 지난해에도 올해 달력까지는 만들었지만 점점 달력 수요가 줄어드는 분위기라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도 지난해부터 고객배포용 달력을 만드는 대신 제작비용의 일부를 환경단체인 서울그린트러스트에 기부하고 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달력 대신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관리하는 최근의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2017년 달력을 148만부 찍었던 KEB하나은행은 내년 달력을 132만부만 제작했다. 2년 만에 16만부를 줄였다. 재무구조 개선작업이 한창인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부터 달력을 만들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달력 제작을 중단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기저에는 달력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시대 흐름이 있다. 스마트폰에 일정을 입력하고 그 일정이 클라우드에 고스란히 저장되는 시대 흐름이 각 기업의 사정과 맞물려 달력 감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충무로에서 40년간 인쇄소를 운영했다는 박모씨는 는 “주변 인쇄소에서 달력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며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나온 2010년께부터 달력과 다이어리처럼 종이로 만드는 제품 발주가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수량이 줄어든 달력들은 점점 고급화·소량화되는 추세다. 그래서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KT는 프랑스 출신의 유명 비주얼 아티스트 장 줄리앙과 협업해 직원용 탁상달력을 만들었다. 인터넷 기업인 카카오와 네이버는 각각 자사 캐릭터인 라이언(사자)과 브라운(곰) 등을 넣은 신년 달력을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유료로 판매하고 있다. KT의 한 직원은 “줄리앙 달력을 구해달라는 친구들이 많지만 여분을 못 구했다”고 말했다.
/박한신·박효정 기자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