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가장 오래된 미디어라 가장 느린 매체로 치부되곤 하지만 편견이다. 책은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데 있어서는 그 어느 매체 못지않게 빠르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건 ‘힐링’이라는 시그널을 가장 정제된 콘텐츠로 가장 처음 보낸 것도 책이었다. 출판계는 ‘힐링의 힘’으로 관객 800만 명 이상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모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신드롬에 앞서 ‘힐링’을 화두로 삼은 책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했다. 일찌감치 연초부터 줄줄이 소개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를 비롯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이 바로 그것으로, 이들 ‘힐링 에세이’는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힐링이다”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쩌면 블록버스터가 아닌 외국영화로 첫 천만 관객을 향하고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기적 또한 책에서 분 선제적 힐링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올해도 책은 4차산업 혁명, 남북 관계, 미중 무역 전쟁 등의 빅 이슈로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서울경제신문은 교보문고와 공동으로 경제경영, 에세이, 인문, 역사문화, 정치사회, 과학, 소설 등 7개 분야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했다.
경제 경영 분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인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초격차’와 세계 0.001% 안에 드는 ‘부의 거인’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 선택됐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든 경영자가 들려준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성공담은 독자들에게 꿈을 심어주었고, ‘슈퍼리치’가 만들어내고 고수한 원칙들은 ‘부의 사다리’가 사라진 시대에도 희망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에세이 분야에서는 ‘목숨이 비용’으로 치부되는 씁쓸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골든 아워’와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유려한 문체로 짚어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올 한해를 빛낸 책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한 미투 운동에서 확산된 ‘당당한 여성상’ 역시 출판계에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였다. 페미니즘 서적이 잇달아 출간된 가운데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은 인문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의 아내가 아닌 그 누구보다 당당한 한 여성으로의 삶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 외에도 올해 다시 한번 인문학 열풍을 몰고 온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그리고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현장에서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린 결정적 무기인 공감과 경계에 대해 쓴 ‘당신이 옳다’가 ‘멘탈 방어’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든든한 방패가 돼주면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혔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