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는 출판인들을 비롯해 인터넷 서점 예스24 와 알라딘 독자가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올 한해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긴 호흡의 서적들이 더 이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요즘 1권은 438쪽, 2권은 388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골든 아워’가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이 교수의 진정성 때문이다. 분량이 주는 중압감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았지만 그럼에도 책 표지를 장식한 이 교수의 구부정한 뒷모습은 독자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의 뒷모습에는 어떤 생명도 덜 중요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생각하며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 센터 설립을 주장하며 싸우고 버텨왔던 시간들이 놓여있다.
이 교수는 외상외과에 발을 내딛은 2002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각종 진료기록과 수술기록 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억들을 모아 책에 담았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최전선인 중증외상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마음을 졸이면서 보는 한편의 의학 드라마와 같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이들의 절박한 사연과 그들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편 ‘꼭 살려내 주세요’라고 응원을 보낼 만큼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안타깝고 절절하게 다가온다.
‘골든 아워’가 중증외상센터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직장인의 비애 역시 생생하게 전달된 점 역시 독자들에게 일종의 동병상련을 유발하는 기제다. 이 교수는 줄곧 경영진으로부터 중증외상센터를 없애라는 압박을 받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이 교수는 그만두고 싶지만 ‘직장이란 잘릴 때까지 다니는 것이지,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며 마음을 다잡는 모습, 중증외상센터가 없어질 경우 갑상선 수술 등을 배워 차선의 ‘밥벌이’를 고민하는 그의 모습 등은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또 생과 사의 생생한 현장부터 이 교수의 신랄한 비판이 마음에 콕콕 박히는 또 다른 이유는 간결한 문체가 주는 힘에 있다. 소설가 김훈의 문장을 따라 했다고 고백하기도 한 이 교수이지만 모든 문장은 이국종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였다. 그의 표현대로 그의 문체는 딱딱한 ‘이과 남자’ 스타일이었지만, 그의 간결한 언어에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진정성과 온기가 있었다.
‘골든 아워’ 1권과 2권의 첫 페이지는 모두 ‘정경원에게’로 시작한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정경원은 이 교수와 수년 간 함께 해온 후배다. 이 책은 어쩌면 앞으로 중증외상센터를 끝까지 이끌어갈 후배를 위한 기록이다. “정경원이 나아갈 수 있는 길까지는 가야 한다……. 거기가 나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골든 아워’ 2권 313쪽)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