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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건축학 석사 졸업, 국내 건축사무소 여성 설계본부 팀장, 미국 명문 카네기멜론대 건축학·빌딩 성능 진단 분야 공학 박사, 동 대학 건축학과 연구교수.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내 환경과 에너지를 동시에 분석하는 솔루션 기업 ‘아틀라슨’을 창업한 박지현(43) 대표가 2000년 이후 국내외에서 쌓아온 이력이다. 18년 간 실내환경 및 건물 성능평가 분야에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로 활동해온 그가 창업을 선택하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땄는데, 왜 창업을 해서 사서 고생하느냐는 반응이 많았죠. 하지만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안 해 보고 후회하느니 부딪혀 보고 깨닫는 게 낫잖아요.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 조언도 듣고 많이 따지지는 편이지만 한 번 결심하면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제 성격도 한 몫 한 것 같아요.”
그렇다. 남들이 보면 안정된 환경을 뒤로 한 채 한 순간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이화여대에서 건축학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국내 건축사무소에서 7년간 일하며 설계본부 팀장까지 올랐고 업무도 익숙해졌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박 대표는 “평소 디자인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건축학을 전공하면서도 매번 건축을 실내환경 디자인과 접목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유학을 간 것도 이런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측면이 더 컸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미국 유학 생활이 쉽지 만은 않았다. 국내에서 안정된 직장과 삶을 포기하며 넘어온 만큼 여기서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처음엔 지적 호기심을 채운다는 생각에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두려워지더군요. 중간에 그만두거나 박사 학위를 따지 못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럴수록 밤낮 가리지 않고 도서관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녀는 박사 학위를 준비했던 그 시기를 몸은 가장 힘들었어도 가장 치열하게 인생을 살았던 때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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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의 계기는 의외의 순간 그녀에게 찾아왔다. 박 대표는 박사 학위 취득 후 카네기멜론대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하며 미국 정부기관과 프랑스·캐나다·영국의 유수 기업들의 실내환경 분석 및 에너지 관리 프로젝트를 30여건 이상 수행했다. “1600개 이상 건물들의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다 보니 건물의 에너지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고, 이에 맞는 실내환경을 컨설팅해주는 사업이 유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는 일반화됐지만 한국에는 없는 사업분야이기도 했고요. 공학 중심인 카네기멜론대학의 경우 학생들이 자신의 논문이나 전공을 사업화로 연결해 창업에 나서는 문화가 잘 형성돼 있던 점도 제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데 도움을 줬어요.”
하지만 박 대표는 오랜 기간 외국 생활로 한국의 창업 환경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는 이화여대 동문인 김소영(현 아틀라슨 연구소장)씨와 의기투합했다.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글 쓰는 게 좋아 작가로 활동하던 김씨는 대학 시절 단짝 친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학 시절 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우스갯소리로 다음에 사업을 같이 꼭 해보자고 했는데 현실이 된 거죠. 제가 빌딩 에너지 관리 및 분석에 필요한 알고리즘 개발을 맡고 소영이는 국내 행정 업무를 담당하기로 하면서 아틀라슨를 창업하게 됐어요.”
2월 창업 후 아틀라슨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내환경과 에너지를 동시에 분석하는 솔루션을 갖추고 있으며 재단법인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한 제19회 여성창업경진대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자체 개발한 실내 공기측정 디바이스는 국내 모 통신사와 협업해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제품은 총 9가지의 실내환경 요소를 측정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온도·습도·이산화탄소(CO2)에서부터 미세먼지(PM10),초미세먼지(PM2.5), 휘발성 유기화합물 (TVOC), 일산화탄소 (CO)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빛의 밝기 정도를 나타내는 조도와 소음도 체크한다. 박 대표는 “보통 실내 환경을 떠올리면 온·습도와 이산화탄소 정도를 생각하지만 아틀라슨는 사람의 쾌적함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까지 파악한다”며 “특히 적정 조도와 소음 수준까지 측정해 최적의 실내 환경을 구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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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환경을 관리하면 업무 효율성도 높아진다. 박 대표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길 수 있지만 실내환경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인지능력은 61%, 집중력은 66%, 업무생산성은 14% 향상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면서 “콜센터나 학교 교실, 공공기관과 대기업 사무실처럼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경우라면 아틀라슨의 컨설팅을 통해 달라진 실내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틀라슨의 실내환경 및 에너지 관리 솔루션은 실내환경을 사용자의 80% 이상이 만족하는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면서 에너지 낭비의 주범인 과쾌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10~15% 절감해줍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 만족도를 고려한 국제 규정상 여름철 실내 온도는 섭씨 22~28도로 범위가 넓죠. 대부분 오피스들은 초기 구간인 22.3~23.1도로 설정돼 있는데 아틀라슨이 자체 개발한 실내환경 측정 시스템과 설문 빅데이터를 활용한 적정 실내온도는 24.8~26.3도입니다. 바로 여기서 발생한 차이를 줄이면 그만큼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죠.”
실제 아틀라슨의 기술은 에너지 소비가 많은 대형 건물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센서로 빌딩 내부의 적정 실내환경을 분석한 후 중앙관제센터로 보내 빌딩의 공조시스템을 알맞게 컨트롤하는 방식이다. 현재 수원시청 등 공공건물 9곳에서 아틀라슨의 인공지능(AI) 엔진을 탑재한 BEMS를 운영 중이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