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대한제국이 사라진 날, 친일의 길 택한 사람들

사진=KBS 제공

오늘(30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망국의 날, 그들의 선택’ 편으로 망국의 날,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탄다.

1910년 8월, 한국병합조약이 체결되면서 500년 왕조의 역사가 사라졌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헤이그 특사 이위종의 아버지인 이범진 역시 망국의 슬픔에 자결을 택했다. 그러나 망국의 날,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 사라진 대한제국

한국병합조약이 체결되자마자, 황제국인 대한제국은 빠르게 사라졌다. 일본이 한국 황실 격하 작업을 단행한 것이다. ‘순종 황제’가 ‘창덕궁 이왕’으로 격하되었고, ‘대한제국’ 국호도 ‘조선’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강제병합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일본 귀족 작위가 내려졌다. 이들은 귀족 작위와 함께 거액의 은사금을 챙겨 부를 축적했다. 귀족 작위 수작자 명단 발표식과 함께 대한제국이 사라진 날 친일의 길을 택한 사람들을 알아본다.

▲ 일진회의 모든 것


망국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일진회! 한국이 강제병합 되기 8개월 전, 100만 명의 이름으로 한일합방을 바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일진회는 친일적인 행보를 보인다. 일본의 보호국을 자청하는 선언서를 발표하고, 고종 퇴위 운동을 벌였던 일진회. 이 단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가 몰랐던 일진회의 진실은 무엇인가? 방송사상 최초로 일진회를 집중 조명해본다.

▲ 일진회, 그들의 변명

일진회의 친일행동은 한국을 위한 선택이었다? 황인종의 번영을 위해서는 일본을 필두로 한중일이 연합해야 한다는 일본의 동양평화론에 공감했던 일진회. 한국강제병합 당시 중국의 반응을 살펴보며 일본 동양평화론이 안고 있었던 문제점을 살펴본다.

▲ 친일단체 일진회의 최후

일진회 회원들이 바라던 망국의 날이 왔지만 일진회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일본이 일진회 활동을 규제한 것. 일본에게 일진회는 어떤 존재였나? 친일단체 일진회를 바라보는 일본내각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한국 강제병합 이후 친일단체로 각인된 일진회. 이들은 의병의 표적이 되어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의병이 일진회 회원들을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진회 회원들의 필수 아이템과 함께 그들의 최후를 살펴본다.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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