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범→수사→사퇴' 반복...정권에 휘둘리는 포스코·KT 수장


이구택·정준양·권오준 회장 등
포스코 민영화 후 모두 중도 하차
KT도 임기채운 수장 한명도 없어
연임에 성공한 황창규 현 회장도
警수사 압박에 중도 사퇴 가능성


세계 5위 철강사 포스코에서 임기를 채운 역대 회장은 단 한 명도 없다. 잔여 임기가 얼마건 새 정권 등장에 맞춰 예외 없이 중도 사퇴했다. 권오준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스스로 내려오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대부분의 전임 회장들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며 불명예 퇴진했다. 권 전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고도 갑작스레 사퇴한 것을 두고 한 핵심 관계자는 “권 전 회장은 본인 명예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전임 회장들처럼 자리를 지키다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는 걸 원치 않았다”고 전했다. 정권 차원에서 전해지는 분위기를 알아채고 알아서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얘기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민영화 된 KT&G 사장 선출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폭로하면서 “KT와 포스코 등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관리 방안을 모색하라는 차관 지시를 직접 들었다”고 주장했다. KT와 포스코는 KT&G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에 이르는 민간 기업이다. KT가 48%고 포스코는 55%에 달한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청와대와 정부는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100% 그대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다. 포스코는 창립 이래,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 이후 단 한 차례도 최고경영자(CEO)가 임기를 채운 적이 없다. 정권이 이들 기업의 CEO 자리를 일종의 전리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취임(연임)→정권 교체→검찰 수사→사퇴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포스코 민영화 이후 취임한 이구택·정준양·권오준 회장 모두 중도에 물러났다. 이 전 회장은 경영 비리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만에 물러났고 정 전 회장 역시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정 전 회장은 당시 부실 기업을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KT 역시 민영화 이후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남중수 전 사장부터 이석채 전 회장, 현재의 황창규 회장까지 정권 교체 이후 검찰(경찰) 수사 대상에 올라 사퇴 압박이 가해지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 민영화 이후 KT의 첫 수장이었던 이용경 전 사장은 “민영초대 사장으로 연임의 전통을 만들겠다”며 사장에 재도전했지만 갑작스레 공모 과정에서 철회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김대중 정부 당시 임명됐던 이 사장이 노무현 정부 출범 후에도 자리를 지키는데 부담감을 느끼고 포기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후임 남 전 사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검찰 수사가 시작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퇴했다. 뒤를 이은 인물이 이석채 전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회사 자금 131억원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자 사퇴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기소된 지 4년여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은 이후 언론에 “청와대의 ‘하명수사’였다”고 주장했다. 황창규 현 회장 역시 전임 CEO들과 똑같은 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 2017년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은 2020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협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어 중도 사퇴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종=한재영기자 ·고병기·강동효 기자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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