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온 하루에게 새 저고리를 갈아입히면
고요의 스란치마에 꽃물이 든다
지금 막 나를 떠난 시간과 지금 막 내게로 오는 시간은
어디서 만나 그 부신 몸을 섞을까
그게 궁금한 풀잎은 귀를 갈고 그걸 아는 돌들은 이마를 반짝인다
염원이야 피는 꽃과 내가 무에 다르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겐 배내옷을 지어 놓고 기다린다
한철 소란한 꽃들이 제 무게로 지는 길목에선
불편한 계절이 자꾸 아픈 손을 들어 보인다
저 계절에게 나는 알약 하나도 지어 주지 못했다
내가 만지는 이 유구와 영원은 사전의 말이 아니다
고요가 찾아와 이제 그만 아파도 된다고 위로할 때에야
나는 비로소 찬물처럼 맑아진다
나에게 온 날보다 나에게 오지 않은 날을 위해
서툰 바느질로 나는 깃저고리 한 벌은 더 지어 놓아야 한다
새해가 밝았다. 어린이는 한 살 먹는 게 기쁘고, 늙은이는 한 살 느는 게 서글플 수도 있지만, 시인이 열어주는 새 날들이 아기들 잇몸처럼 눈부시다. 백년도 살기 힘든 사람이 영원을 보살피다니, 낫을 걱정하는 풀꽃이나 바람 걱정하는 촛불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천년 늙은 영원이라도 날마다 옹알이하면서 오니 깃저고리를 짓는 찰나의 마음이 영원보다 크고 아름답다. 2019년 저마다 내게로 오는 신생의 날들을 소중히 맞아 금자둥이 옥자둥이로 만들 일이다.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