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신년 인터뷰] 문희상 국회의장 "경제 단숨에 되살릴 요술램프는 없다"

최근 만나는 사람들 10명 중 8명이 경제 어렵다고 하소연
정부 무조건 옳다고 고집 말고 국민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정치 불신 국회가 자초...갈등조정 역할 위해 최선 다할 것

대담=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민생경제 문제는 도깨비방망이나 요술램프 같은 혁명적 수단으로 단숨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국민보다 반 발자국 앞에서 차분히 정책 속도를 조절해가며 더디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희상(사진) 국회의장은 1일 국회의장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이제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서도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며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현 정권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과 당부를 쏟아냈다. 지난해 7월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문 의장은 노무현 정부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대표적 ‘범친노계(노무현계)’ 인사다. 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위기 때마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구원 등판해 당을 살려내기도 했다. 여권 인사 중 그 누구보다도 현 정권을 잘 이해하는 동시에 애착도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기에 그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쏟아내는 고언들에는 애정 어린 진심이 묻어났다.

문 의장은 먼저 집권 3년 차인 문재인 정부가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과제로 우리 사회 각계각층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만날 때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안심하게 마련”이라며 “야당 대표는 물론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야권 인사들과도 자주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허준의 동의보감 ‘잡병’ 편에 나오는 ‘통즉불통 불통즉통 (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글귀를 인용해 “몸속을 흐르는 모든 것이 제대로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게 된다는 말처럼 지도자는 끊임없이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며 소통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문 의장은 소통 부족의 아쉬움을 나타냈다.

“저도 소득주도 성장의 큰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당장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국민 대다수의 하소연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도 만나는 사람들 10명 중 8명이 경제가 어렵다고 얘기를 합니다. 특히나 경제는 심리입니다. 이럴 때는 가만히 앉아서 무조건 정부 정책이 옳다고만 주장할 게 아니라 국민들과 밀착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설득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문 의장의 지적처럼 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민주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경제실패’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소통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 의장은 최근 들어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며 국정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는 현 정권의 위기 극복 방안 중 하나로 청와대와 정부 핵심인사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 카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시대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의 3단계 ‘국가경영전략론’을 본보기로 들었다. 율곡 선생은 나라는 ‘창업(創業)-수성(守成)-경장(更張·확장과 혁신)’의 3단계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다고 임금에게 가르쳤다.


“창업기에는 서로 코드가 맞으면서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개국공신을 중용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수성’의 단계에 진입하면 국정운영의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전문적 지식과 경륜을 갖춘 인사들을 기용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조건에 부합한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반대 진영의 야권 인사라도 청와대나 내각에 등용해야 합니다. 이제는 개혁을 위해 공신을 중용했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문 의장은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여권 원로 인사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이러한 뜻을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문 의장은 대통령이 야당과의 협치에도 더욱 힘써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대통령은 여러 악기의 조화를 통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내각을 지휘하고 의회와 소통하며 국정운영을 훌륭히 수행해내는 동시에 국민통합까지 잘 이뤄내야 한다”며 “각종 개혁입법과 민생입법이 부진한 점에 대해 정부·여당이 책임을 느끼고 최선을 다해 야당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해 당면 과제로 문 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서 바닥에 떨어진 국회의 신뢰도를 되찾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최후의 보루는 바로 국회입니다. 국회가 망하면 민주주의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는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기는커녕 최소한의 신뢰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으로서 남은 임기 동안 단 1%라도 국회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문 의장은 이처럼 국회가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 문화를 꼽았다. 그는 “맹자의 ‘이루’ 편에 자신이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들도 나를 업신여긴다는 뜻의 ‘자모인모(自侮人侮)’라는 말처럼 국회의 품격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 국회는 대통령이나 국민들에게 무시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업신여기니 남들도 더욱 국회를 무시하는 셈이다. 국회 스스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솔선수범해야 국민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고 주문했다.

문 의장은 새해 20대 국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대한민국 정치사의 오랜 숙원인 선거제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제시했다. 지난달 15일 여야 5당 대표는 올 1월까지 국회에서 선거제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각 당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선거제 개편 논의는 그 뒤로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의 대원칙은 표심을 왜곡하는 현행 제도를 고쳐 득표수에 비례하는 의석수를 갖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개편안을 놓고 각 당의 이해관계와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려 있지만 현재의 지지율과 정치상황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여야가 힘을 합쳐 20대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만이라도 이뤄낸다면 역사적으로 정치 개혁을 가장 많이 한 국회로 기록될 것입니다. 임기 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국회의장으로서의 모든 역할과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문 의장은 야당 일부에서 주장하는 독일식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초과의석이 발생해 전체 의석수가 늘어나는 문제점이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대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거론되는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서는 현행 의석의 10% 수준인 최대 30석까지 늘리되 세비 고정과 보좌진 축소 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면 최대 30석 범위 내에서 보좌진 축소 등으로 국회의원 세비를 현재의 총액에서 동결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국민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며 “선거제 개편은 올해 안에 반드시 처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에 대해서도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분노해 광장에 모인 촛불민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바꾸라는 것이었다”며 “선거가 없는 2019년이야말로 20대 국회에 주어진 개헌의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문 의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조정·해소해나가는 국회의 역할도 당부했다. 그는 “국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서로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의장 역시 국회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는 20대 후반기 의장 취임과 동시에 특수활동비를 전면 폐지한 데 이어 국회혁신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국회의 인사·예산·조직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있다. 아울러 여야의 상시적인 협치를 위해 원내대표 정례회동과 5당 대표 회담인 ‘초월회’, 중진의원 모임인 ‘이금회’ 등 국회 내 다양한 대화 테이블도 만들었다. 또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일하는 국회의 풍토를 조성하고자 법안심사소위를 정례화하고 의제별 소위를 구성해 집중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소위원회 활성화’ 방안도 국회 운영위원회에 제출했다.

/정리=김현상·송주희기자 kim0123@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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