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예상하는 2019년 경제는 ‘혼돈’과 ‘약화’ 두 단어로 요약된다. 미국이 새롭게 정립하는 세계 무역질서의 혼돈 속에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점차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 탓이다. 특히 산업경쟁력을 높여 방파제를 쌓는 데 실패하며 글로벌 수요 감소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경영환경이 악화하며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가 지난해보다 더 나빠진다(61.5%)는 시각보다 한국 경제가 나빠진다(77.8%)는 의견이 더 높다. 정책 리스크와 꽉 막힌 규제로 우리 경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실력인 잠재성장률(2.7~3.0%)에도 못 미치는 성장을 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기업이 우리 경제가 이미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데 동의하고 있고 주력산업 경쟁력을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출 금맥 ‘전자’ 업체 100% 올 한국 경기 ‘하강’=지난해 미국이 중국을 향해 관세 폭탄의 포문을 열며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와중에도 우리 경제가 성장 경로를 이탈하지 않은 것은 사상 처음 6,000억달러를 넘어선 수출 덕이 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4분기 경제성장률(0.6%)에서 순수출(수출-수입)의 기여도는 1.7%포인트로 지난 2011년 3·4분기(3.6%포인트) 이후 최고였다. 투자 위축으로 내수(-1.1%포인트)가 성장률을 갉아먹는 와중에도 수출이 경제를 이끌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수출 중에서도 전체 수출액의 20%를 넘어선 반도체의 역할이 컸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설문에 참여한 반도체 신화를 이끈 전기전자 기업 전부(100%)가 “올해 한국 경제가 이미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고 밝힌 점이다. 전자 업계 고위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 반도체 공급시설을 짓고 있다”며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한국도 현재의 성장 경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업종에 걸쳐 한국 경제 하락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92.7%에 달했다. 조선(100%)과 정유화학(80%), 자동차(71.4%) 등 주력산업 모두 국내 경제를 밝게 보지 않았다.
◇한국 경제성장률 2% 초반 그칠 것=한국 경제를 수출이 떠받치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것은 부담이다. 기업의 61.5%가 지난해보다 올해 세계 경제가 나빠진다고 진단했다. 세계 경제를 끌어내릴 위험요인으로는 미국발 무역전쟁(60.6%), 지정학·정치 리스크(6.4%) 등을 택했다. 전 세계적인 금융비용 상승을 끌어올려 내수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신흥국 금융시장마저 흔들 수 있는 미국의 금리 인상(12.8%), 환율 등 금융시장 불안(4.6%)도 걱정했다. 중국 경제(11.9%)의 불안도 큰 위협요인이었다. 특히 우리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우 미국의 무역 압박 영향으로 경제가 나빠질 것(64.2%)으로 봤다. 세계 경제가 요동치면서 우리 경제를 지탱한 수출환경이 나빠졌다. 이 때문에 기업들 절반(46.8%)이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2% 초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2% 중반(38.5%)까지 합치면 85.3%가 2% 초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경제가 원활히만 돌아가도 달성할 잠재성장률은 물론 주요 기관(한국은행 2.7%, IMF·현대연 2.8%)의 전망보다도 눈높이가 낮은 것이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불안을 걱정했지만 기업들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부담요인으로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41.8%)와 투자 위축(19.1%) 등 내부적인 요인을 꼽았다. 설문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는 “사이클을 타는 세계 경기와 달리 산업현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 산업의 경계가 파괴되고 있지만 규제 등으로 미래에 대한 투자는 막혀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원화 약세·국제유가 안정 예상, 수출환경은 호전=다행스러운 점은 세계 경제의 둔화에도 수출환경은 올해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기업들 절반(50.5%)이 올해 원·달러 환율을 1,100~1,150원으로 예상하며 지난해(1,098원)보다 원화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봤다. 환율이 오르면(원화절하) 제품 가격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여기에 올해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했던 국제유가도 60~70달러(57.8%) 수준으로 안정될 것으로 예측했다. 유가가 하락하면 수출을 위한 운송비가 절감되는 것은 물론 생산을 위한 각종 고정비용도 줄어든다. 다만 유가 안정에 공급 과잉이 아닌 수요 부족에 대한 우려도 담긴 것은 불안요인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하면 생산시설의 가동률이 떨어지고 결국 유류 사용도 줄어드는 것”이라며 “수요 위축으로 인한 유가 하락은 수출기업이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