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의 4차 산업혁명] 기득권자의 포용성, 기회의 평등 낳아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114>지속적 혁신과 노블리스 오블리주
결과의 불평등이 규제·갈등 유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만들려면
열린교육·진입장벽 낮추기 필요


혁신은 기업가정신의 산물이다. 산업혁명은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기술혁명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계기로 1,000년 이상 정체된 소득과 인구가 급증했다. 산업혁명의 전후를 나누는 대분기(great divergence)로 인간의 삶이 극적으로 개선됐다. 산업혁명 이전 90%에 달하던 극빈층은 이제 10% 이하로 축소됐다. 그런데 그 10%의 극빈층은 북한·아프리카 같은 시장경제가 자리 잡지 못한 독재국가에 남아 있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민주국가는 단 한 번의 기근도 겪은 적이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러나 기업가적 혁신을 이루는 소수는 대중으로부터 괴리된다. 결과의 불평등은 대중에게 질시의 대상이 된다. 기업가들이 불공정한 방법으로 부를 취득하면 대중의 공분을 초래하게 된다. 결국 애덤 스미스와 조지프 슘페터가 우려한 기업가정신을 억누르는 제도가 도입돼 국가 성장을 저해하고 국가는 뒷걸음치게 된다.

성장은 기업가정신에 기반하지만 그 결과 대중과 괴리돼 포퓰리즘이 발현하게 된다. 기회의 평등은 기업가적 혁신으로 성장을 촉발하나 결과의 불평등이 기업을 규제하게 해 성장을 가로막는다. 대중의 불평등 수용성이 국가 발전의 한계다. 성장은 지속하되 대중과 괴리를 막는 대안이 시장경제의 성공 열쇠인 이유다.


기업가정신의 근원은 이기심이다. 일회성 거래에서는 이기심이 남의 것을 빼앗는 제로섬 경제가 된다. 자본주의의 추한 면이다. 반복되는 거래에서는 이기심이 남의 이익을 챙겨주는 플러스섬 경제가 된다. 자본주의의 밝은 면이다. 투명하고 반복되는 시장경제는 모두에게 이익이 선순환될 수 있다. 기업가가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를 만들고 그 중 일부를 가져가면 사회 전체에 성장과 분배가 순환되는 이기심의 승화가 발생한다. 스미스가 얘기한 ‘빵집 주인의 이기심으로 우리가 빵을 먹는 것’이라는 의미가 바로 호혜적 이기심이다.

호혜적 이기심은 미래 가치인 기회의 평등과 현재 가치인 결과의 평등을 아우르는 대안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미국 부자들이 세계 최대의 기부를 하는 이유가 바로 대중과 혁신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함이다. 물론 불공정거래 척결은 당연한 전제조건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포용적인 사회가 지속가능한 시장경제의 3대 조건이다.

이제 포용의 대안을 살펴보기로 하자. 결과의 평등은 개인의 의욕을 저해하나 결과의 불평등은 집단의 갈등을 촉발한다. 직접적으로 결과의 불평등을 없애려는 모든 시도는 역사상 성공한 사례가 없으나 간접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시도는 역사상 성공한 사례가 너무 많다. 즉 포용적 사회란 기회의 창이 모두에게 열린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은 본원적으로 불균형이고 분배는 원래 균형을 추구한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 성장과 분배를 순환시키는 지속 가능한 사회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회 평등의 필요조건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참여 기회의 창이 열려 있어야 한다. 교육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활용한 열린 교육으로 저비용의 고품질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고비용 교육은 부의 대물림을 초래해 기회의 평등을 저해하게 된다. 그런데 간판 위주의 사회보상이 과도한 입시경쟁을 촉발한다. 기회 평등의 충분조건은 간판이 아니라 역량에 의한 평가 시스템이다. 즉 진입장벽이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의사·박사·회계사 같은 자격 간판이 대표적 진입장벽이다. 사전 간판 따기 경쟁이 아니라 사후 지속적 평판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기회 평등을 제공하는 사회로 가는 길이다. 이러한 진입장벽 축소는 의사·약사·변호사 등 가진 자의 포용성이 관건이다. 성장과 분배, 기회와 결과 평등의 연결고리는 ‘가진 자의 자발적 포용성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