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료를 받던 중 의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박모씨가 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같은 피해 사례를 막기 위한 ‘임세원법’ 제정이 추진된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의료인 폭행·협박에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시민단체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 개정에 탄력이 붙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유가족의 뜻을 반영해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측은 “고인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현 권준수 이사장을 중심으로 추모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면서 “안전하고 완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현황 조사 및 정책방안들을 논의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향후 대책위의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임 교수는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환자 박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 부위를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 이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나선 박씨는 “왜 (의사를) 죽였느냐” “원한이 있었느냐” “유가족에게 할 말이 있느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의료계가 의료기관 내 폭행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 18·19대 국회에서 의료기관 내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이 계속 발의돼왔다.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 또는 협박하는 경우 가해자에 대한 징역형을 강화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한다는 게(반의사 불벌죄 폐지) 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그동안 의사들이 가해자의 보복을 우려해 폭행·협박을 당해도 고소·고발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했다.
그러나 법안 심의 과정에서 환자단체의 반발에 막혔다. 의료인에게 환자들이 어떠한 불만이나 항의도 제기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법 적용 대상을 의료진에서 환자까지 포함해 ‘누구나’로 확대하고 반의사 불벌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환자단체에서 양보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의료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반의사 불벌죄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병원에 금속탐지장치나 검색대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하루에 진료 건수가 수백건이 넘는 병원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제 정부가 나서 징역형을 높이고 반의사 불벌죄를 없애는 법 추진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