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도 교육청이 유치원 입학지원 시스템 ‘처음학교로’에 사립유치원 참여를 의무화하는 것을 놓고 찬반양론이 거세다. 지난 2017년 시행된 처음학교로는 학부모들이 유치원 지원·추첨 시 현장에서 밤샘 대기하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 신입생 모집·선발·등록 등의 절차를 현장방문 없이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입학지원 시스템이다.
지역 교육당국이 그동안 불참한 사립유치원에 제재를 예고해온 가운데 지난해 말 경기도교육청이 참여하지 않은 사립유치원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재정지원금 지급을 일부 중단했다. 열일곱 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경기·강원·인천·경북·울산 등 열 곳이 올해 상반기 안에 처음학교로 의무화 조례 제정을 완료할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학교로 의무화 찬성 측은 유아들의 출발선에서 균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고 취약계층의 유치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유치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참여 강제는 유아교육법이 규정한 원아 모집에 대한 원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직권 남용이고 입학 시스템의 무작위 배치로 학부모들이 피해를 본다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2019년 원아 모집과 관련해 교육부 지침으로 각 지방 교육감은 ‘처음학교로’ 입학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각 지방 교육청들은 처음학교로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학급운영비·교사처우개선비 미지급, 감사 우선 실시, 공모사업 배제, 방과 후 과정비 전액 삭감 등 상당한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선포하였음에도 많은 사립유치원은 처음학교로에 가입하지 않았다.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처음학교로를 ‘유치원 입학을 원하는 보호자가 시간과 장소의 제한 없이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유치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신청하고 유치원은 공정하게 선발된 결과를 알려줌으로써 학부모의 불편을 해소하고 교원의 업무를 덜어주는 입학지원 시스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교육부의 설명만 들여다보면 사립유치원들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사립유치원들은 왜 처음학교로에 참가하지 않을까.
교육부에서 지난 2015년 발표한 ‘원아 1인당 공립·사립 유치원 교육비’ 자료를 살펴보면 공립과 사립의 학부모부담금 차이가 열 배를 웃돈다. 처음학교로를 시장에 비유하자면 사립은 열 배나 비싼 교육 서비스를 갖고 공립과 같은 사이트에서 동시에 경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립유치원은 처음학교로 참가의 전제조건으로 공립과 사립의 동등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사립유치원이 공립유치원과 동등한 지원을 받는다면 학부모부담금을 받을 이유가 없으며 유아교육법에서 명시한 무상교육도 실현된다. 이런 경우라면 공립과의 경쟁을 이유로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도 사라진다.
처음학교로의 또 다른 문제는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학부모들의 가장 큰 불만은 형제자매가 같은 유치원에 입학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또 무작위 배치로 집 앞 도보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입학하지 못하고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유치원에 배정됐는데 해당 유치원이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했다. 입학 시스템은 학부모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인 만큼 처음부터 당사자인 유치원과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부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 사용을 강제하다시피 한 입학 시스템은 법으로 보장된 유치원 원장의 권한에 대한 과도한 침해다. 법으로 명시된 원아 모집의 자율권과 선택권은 원장에게 있음에도 그 권한을 아무 논의나 설명 또는 설득 과정 없이 교육감에게 강제로 이양하는 것은 과연 민주주의적인 방식인지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시행된 추첨제도 교육부와 교육감이 학부모들의 입학 편의와 공정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2012년 강제로 의무화한 방식이다. 이 방식을 도입한 지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어떠한 논의나 검증도 없이 공립유치원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의 사용을 사립유치원에 또다시 의무·강제하는 것은 법으로 보장된 운영권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학부모와 유치원을 탁상행정의 ‘마루타’로 여겨 희생을 강요한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또 처음학교로에 가입하면 유아교육법을 위반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다. 유아교육법(시행규칙 제6조제3항)에 따르면 신입생 원아 모집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2019학년도 원비를 책정해 학부모에게 고지해야 한다. 하지만 처음학교로 가입을 종용하는 시점이던 2018년 10~11월에는 2019년 원비를 결정할 수 있는 어떠한 지침도 없었다. 원비를 그냥 정하고 모집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아교육법(제25조제3항)에 따라 유치원 원비의 인상률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원비는 교직원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인건비 책정을 위한 2019년도 최저임금이 아직 확정 결정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원비를 책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학교로를 사립유치원이 위법 없이 사용하려면 유아교육법을 수정하거나 원비가 확정되는 시점까지 등록 대기자 자격을 연장할 수 있어야 한다. 국공립은 원비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거의 고정이라 원비를 책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지만 사립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처음학교로에서 유아 정보는 12월31일 모두 자동으로 삭제되는데 실질적인 원아의 입학 결정은 2~3월에 이뤄진다. 사립유치원 입학은 전적으로 학부모의 결정으로 이뤄지고 학부모들은 교육의 방향이 아이와 맞는지, 집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등 모든 전반적인 사항을 고려해 선택한다. 실제로 입학·등원하는 3월까지 원아의 학부모들은 수시로 본인이 원하는 학교로 옮겨가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처음학교로를 이용해 원아 모집을 하더라도 결국 원아의 등원 선택은 이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만큼 유아 정보가 자동 삭제돼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