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 우버CDIO “차별없는 능력 발휘가 기업 성패 가른다”

[포춘 인터뷰] 이보영 우버 다양성·포용성 책임자(CDIO)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사내 성추행 문제로 뒤숭숭했던 세계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Uber)’가 강도 높은 사내문화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이보영 우버 다양성·포용성 책임자(CDIO)를 만나 우버의 혁신, 그리고 한국 기업 문화의 혁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진=차병선 기자]이보영 우버 다양성·포용성 책임자(사진)는 분단위로 짜여진 바쁜 방한 스케줄 속에서도 우버 기업 문화 혁신의 사례를 알리기 위해 포춘코리아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2017년 2월 미국 실리콘밸리가 세계 최대 공유자동차 서비스 업체 ‘우버(Uber)’에서 일어난 성추문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자신을 전(前) 우버 엔지니어라고 소개한 수잔 파울러가 입사 후 한 달여 동안 자신이 받은 각종 성추행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낱낱이 공개한 사건이었다.

그녀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입사 후 직장 상사가 사내 메신저를 통해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했다는 것. 문제는 이후 이 문제에 대응하는 우버의 대처 방식이었다. 당시 우버 측은 ‘촉망받는 한 인재가 저지른 첫 실수’라며 경고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이후 ‘혁신의 대명사’, ‘공유경제의 리더’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우버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우버를 이용하지 말자’는 뜻의 해시태그(deleteuber)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가려져왔던 우버 내 성추문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이 이른바 ‘성관계 가이드라인’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낸 것이 알려져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이 일로 캘러닉은 회사를 떠났고, 우버는 오바마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에릭 홀더(Eric holder)를 감사로 영입해 강도 높은 자체 감사와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12월 초 기자와 만난 이보영 우버 다양성·포용성 책임자(CDIO·Chief Diversity & Inclusion Officer)는 이 같은 혁신 과정에서 새롭게 우버에 합류한 인물이다. 우버에서 새 보임을 맡을 당시 이보영 CDIO는 미국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든 CDIO라는 직함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한국에선 생소한 직함 ‘CDIO’

지난 1년 여 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이보영 CDIO는 우버 합류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아시아 지사 방문 목적으로, 싱가포르, 한국, 도쿄를 일주일 내에 돌아야 하는 꽤나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기자와 만난 이보영 CDIO는 이번 방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미국 본사에서 불거진 문제로 우버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역할이 미국 본사로만 한정 지어진 건 아닙니다. 저는 우버 CDIO로서 본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우버 지사를 관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지 내 조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필요하죠. 그래서 이번에 아시아 3개국 방문을 결정했습니다. 이미 싱가포르를 다녀왔고, 한국 일정 소화 후 곧바로 일본 도쿄로 넘어갈 계획입니다.”

필자는 이보영 CDIO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CDIO가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한국 기업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직함이라 정확한 업무가 무엇인지 다른 곳에서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보영 CDIO와 만난 후 가장 먼저 한 질문도 CDIO라는 낯선 직함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분명 한국에선 생소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웬만한 기업은 대부분 CDIO와 관련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보영 CDIO는 말한다. “CDIO는 말 그대로 기업 조직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직책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조직 구성원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줍니다. 조직에 자신을 맞추길 바라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존중을 받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조직에는 다양한 인종, 성장배경, 취향, 성격 등을 가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기본적으론 남녀, 성 정체성(게이, 레즈비언), 장애 유무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죠. 이제 기업은 이 같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지원을 해야 합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속성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고, 업무에서 최고의 역량을 쏟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바로 CDIO의 역할입니다.”

이보영 CDIO가 앞서 언급했듯, 현재 일정 규모를 갖춘 미국 기업은 대부분 CDIO와 전담 부서를 보유하고 있다. 미(未)보유 기업들도 점차 다양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련 조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이보영 CDIO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건 필자에게 예상 밖의 일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어떤 곳인가. 누구나 인정하는 글로벌 혁신의 메카 아닌가. 젊고 역동적인 스타트업들이 탄생하고 성장해온 든든한 터전이기에 당연히 조직문화도 기존 기업에 비해 유연하고 수평적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필자의 생각과 정 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앞만 보고 달려온 스타트업이야 말로 조직문화가 가장 미성숙한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이보영 CDIO는 “그들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과정에서 소수자들이 배제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적 스킬을 가진 CDIO와 전담부서에 대한 니즈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보영 CDIO는 다양성·포용성 분야에서 미국 내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120년 전통을 가진 미국 굴지의 보험사 ‘마시(Marsh)’와 인사조직 컨설팅업체 ‘에이온 휴잇(Aon Hewitt)’ 등에서 CDIO로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보영 CDIO는 말한다. “제가 이 분야에 뛰어든 건 아마 저의 경험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죠. 학창시절과 직장 시절을 보내면서 제가 느낀 건 저와 같은 소수인종, 이민자 출신의 여성들이 미국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성공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의 벽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차별 없이 공평하게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관심을 두기 시작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동양계 이민자 여성이 미국 대기업 임원에 올랐으니, 제가 바로 다양성과 포용성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네요”(웃음)

◆다양성·포용성이 중요한 이유

2018년 1월 우버에 합류한 그는 지난 1년 여 간 제법 큰 폭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다양성·접근성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외부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고, 인사·채용·조직문화 등 사내 모든 제도와 프로세스를 재점검했다. 여성과 소수 인종 채용(기술 직군)을 늘리고, 다양성 유지를 돕는 각종 사내 커뮤니티 운영도 활성화하고 있다. 또 채용과 승진에서 모든 지원자, 모든 직원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사진=우버코리아] 미국 우버 본사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

이보영 CDIO는 지난 1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모든 변화는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모든 직원들이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흥분하지 않도록 변화의 메시지를 유연하게 잘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후에는 우버 내 채용·인사평가 시스템을 재설계하는데 집중해 적절한 기회들이 모두에게 제공될 수 있는 공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저는 일단 첫 단추는 잘 꿰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단행된 인사에서 남녀 직원이 동일한 비율로 승진을 했다는 리포트를 받았거든요. 물론 이것이 엄청난 변화나 성과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어요.”

동양과 서양의 조직 문화는 다르다. 한국에선 나이가 많은 상급자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르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부분 외에도 동서양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뿌리부터 다르다. 물론 특정 문화가 더 낫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다양성’과 ‘포용성’ 측면에서만 보면, 동양기업의 조직문화는 서양에 비해 조금 더 경직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역시 이번 아시아 3개국 방문을 통해 이 같은 부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실제 아시아 기업들의 조직 문화는 어떤지, 다양성과 포용성 측면에서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없는지 궁금해했다. 실제로 이보영 CDIO는 이번 아시아 지역 출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주요 기업 관계자들과 이 주제에 관해 회의를 가졌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제 강국인 한국과 일본의 기업 문화를 통해 전반적인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보영 CDIO는 말한다. “제가 지금까지 확인한 동양 기업 문화의 공통된 특징은 ‘개인은 조직의 대의를 위해 따라가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리더의 목표에 조직원이 따라가고,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조직에 해가 되는 일이라면 다소 피해가 있어도 침묵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반면 서양에선 익히 아시듯, 개인주의 문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직급을 막론하고 직설적으로 밝히고 표현을 하죠. 그래서 다양성, 포용성과 관련된 대화나 주제를 다루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습니다. 이 같은 부분이 동양과 서양 조직문화의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그는 동양권 기업 조직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다루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는 현재 국내 많은 기업들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방식과 의지다. 2018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미투(Me too)’ 운동이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모아야 하듯, 다양성과 포용성도 반짝 관심이 아닌, 조직 문화에 녹아든 일종의 기본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보영 CDIO는 이를 위해선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다양성·포용성 강화에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단기적 해결대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부분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 문화를 100% 버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문화의 긍정적인 부분은 유지하면서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변화 유도해야

이보영 CDIO는 이를 위해 한국 기업, 나아가 아시아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도입해야 할 몇 가지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우선 고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누구나 (차별을) 신고를 할 수 있고, 인사 혹은 그 어떤 일에서도 보복이 가해지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제도는 CDIO와 관련 전담 조직을 두기 전에도 시행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조치라 할 수 있죠. 두 번째로는 기업 내 정책을 다시 한번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여성의 승진비율, 근속연수 같은 것들이 거기에 해당합니다. 요즘엔 많은 기업들이 여성을 상당수 채용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여자가 조직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지금도 조직 문화에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 조직 상황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변화를 모색할 만한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진=차병선 기자]이보영 CDIO는 “차별없는 능력이 기업의 성패를 가른다”며 선진 조직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지원책 마련’을 꼽았다. 이 문제만큼은 남녀 직원 구분 없이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보영 CDIO는 “최근 미국에서 가장 좋은 기업, 가장 좋은 일자리는 ‘자녀가 있는 직원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라며 “워킹맘들의 고충이 큰 한국인 만큼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기업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보영 CDIO와 우버에게 2018년은 의미 있는 한해였다.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역동적인 테크 기업에서 비로소 다양성과 포용성을 심도 깊게 논의한 첫 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는 이제 우버 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이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심을 갖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비로소 근본적인 비즈니스 생태계의 변화와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그녀의 믿음이었다.

이보영 CDIO는 말한다. “왜 우버는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이는 저희 서비스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버는 승차공유, 음식 배달, 고급택시 같은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고객들을 만나게 되죠. 고객들은 성별, 인종, 성 정체성 등 모든 측면에서 다릅니다. 다양한 고객들에게 완벽한 서비스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선 저희부터 먼저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단기적으로 이를 완성하는 건 어렵습니다.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와 우버에 부여된 미션을 완수하고, 이를 통해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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