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생존 리포트] 美 '新먼로주의' VS 中 '주한미군 철수'...비핵화 속셈은 'G2 국익'

<하> 新냉전 속 수렁에 빠진 北비핵화
美, 방위비 분담금 등 동맹 정신보다 비즈니스식 접근
中은 종전선언 등 지렛대 삼아 美영향력 줄이기 시도
日선 北핑계로 보통국가화...비핵화 순수성 퇴색 우려


미·중·일·러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은 표면적으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국익’ 관점에서 접근한다. 북한 비핵화도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과 ‘권력’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세기 초반 미국의 외교 원칙인 불간섭주의를 한반도에 대입하려 한다. 이른바 ‘신(新)먼로주의’다. 한미 안보 관계도 전통적인 우방과 동맹 색채를 엷게 하고 대신 비즈니스와 돈의 논리를 적용하려 한다. 철저하게 ‘나의 이익이 우선’이라며 간섭과 관여를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세력화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 비핵화를 미국의 한반도와 동아시아 개입을 저지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 북한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며 주한미군 철수, 전략자산 배치 중단, 북한이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주요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에서 비핵화 순수성은 퇴색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을 핑계 삼아 보통국가, 군사 대국화로 나아가고 있다. 군사력을 강화하는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는 좋은 근거가 된다. 중국 군용 정찰기가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수시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나 일본이 광개토대왕함을 대상으로 초계기 레이더 논란을 국제 이슈로 부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新먼로주의 내세워…동맹보다 국익 우선=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전략에서는 국익이 동맹에 앞선다. 한미동맹도 마찬가지다. 방위비 분담금을 50% 이상 올리라고 압박하고 있고 주한미군 감축까지 언급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1820년대 불간섭주의를 앞세운 ‘먼로주의’가 재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냉전 종결 이후 미국이 그동안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한반도 경찰’ 역할을 자임했지만 이제는 궤도 수정에 들어가려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남북은 지난해 대결에서 대화로 국면을 전환한 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중국은 찬성했지만 미국은 회의적이었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유엔군사령부 존립에도 위기가 오게 된다”며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는데 미국으로서는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면 아시아 전략에 큰 손해를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엔군사령부뿐 아니라 주한미군, 유엔군사령부의 후방 기지 역할을 하는 주일미군까지 줄줄이 위태로워지는 등 동아시아 세력 싸움에서 중국에 밀려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동아시아 패권경쟁 결과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익에 근거해 사안별로 다르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中, 종전선언 지렛대로 주한미군 철수 시도=반면 미국을 역내에서 밀어내고 싶은 중국은 이를 위해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 이용하려 들고 있다. 현재 중국이 내세우는 북핵 문제 해결방안은 쌍중단(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및 한미 연합훈련 잠정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상 동시병행)이다. 미국의 역내 영향력 감소와 직결된다. 또 중국은 북한 비핵화를 지지하면서도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되는 미국의 과도하고 일방적인 핵시설과 유관 장소 사찰, 검증 등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중국에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자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과 소원했던 과거를 털고 새 밀월 시대를 연 중국은 올해 시 주석의 방북까지 추진, 미국을 추가 견제하면서 한반도에 더 관여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길’ 주장하는 北, 줄타기 외교 조짐=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 압박을 지속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위협성 발언을 내놓았다.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의 회귀를 암시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진 가운데 오스트리아 빈(Wien)대의 뤼디거 프랑크 교수는 북미 양자 관계가 아닌 국제질서 지각변동이라는 더 큰 판 위에서 ‘새로운 길’을 해석했다. 프랑크 교수는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핵 위협이 아니라 미국이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미국을 무시하고 중국 쪽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강대국들이 서로 자국 이익을 따지는 가운데 1950년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균형 외교로 재미를 봤던 북한이 미중 대결로 촉발된 신냉전 구도에서 다시 한번 줄타기를 시도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면서 비핵화는 미루고 제재 틈은 벌릴 가능성이 있다.

각국의 서로 다른 셈법 사이에서 한국의 처지는 점점 곤란해지고 있다. 심지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미가 현존하는 북한 핵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타협을 하는 최악의 경우도 맞닥트릴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루스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한국은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한중 관계를 개선하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고래 싸움의 배경과 전략을 이해하고 국제질서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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