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18년이 지나고 2019년 기해년이 밝았다. 지난해 3월 대통령 특사 방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공언한 후 4월 남북정상회담, 6월 미북정상회담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이번에야말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해결할 수 있을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새해를 맞은 지금 북한의 비핵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3월 우리 측 대북특사단 면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이것을 북한의 비핵화 결단으로 판단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우리 정부의 설명을 직접 듣고 초유의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전격 동의했다. 6·12 싱가포르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던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두 차례 방북,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미국의 거듭된 구애에도 북한이 비핵화 실무협상에 전혀 응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과 전문가, 전직 관료들은 북한이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한국은 애초에 이를 어떻게 확신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북한으로부터 나왔다. 지난해 12월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개인논평을 빌려 “조선반도 비핵화는…북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 제거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북남 영역 안에서 뿐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한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 이전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및 핵 타격수단의 한반도 전개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며 그 토대가 되는 주한미군 철수까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면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그사이에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2016년 7월6일 북한은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과 한국의 선(先)북한 비핵화 요구를 정면 거부하면서 소위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남한 내 미군 핵무기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와 핵기지의 철폐 및 검증, 미국 핵 타격수단의 대한반도 전개 중단, 북한에 대한 핵 불사용 확약, 핵 사용권을 가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지난해 12월20일 밝힌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지난해 3월 우리 대북특사를 통해 밝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살펴보자. 북한의 핵 포기 의사 앞에는 ‘대북 군사적 위협 해소’와 ‘북한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 북한은 이 조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위에 언급된 조선반도 비핵화의 조건들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추론일 것이다. 그러면 과연 북한이 과거와는 다르게 비핵화 결단을 내렸다고 단정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보다 신중을 기하는 편이 좋을까.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은 북한 정권이 자발적으로 비핵화에 응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을 ‘CVID’라고 하던 ‘FFVD’라고 부르던 ‘완전한 비핵화’라고 하던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이지 한국이나 미국의 비핵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있었다. 보다 분명한 비핵화 입장이 담길지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여전히 누구의 비핵화인지 모호한 언급과 함께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길을 가겠다는 위협이 담겨 있었다. 우리 모두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말만 하지 않고 유의미한 비핵화 협상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수단은 현재로서는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치밀한 대북제재 압박구도의 복원뿐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와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