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고용상황과 기업의 지불능력 등을 고려하고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에 대한 독점 위촉권을 내려놓는 내용의 체계 개편 초안을 7일 발표했다. 지난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래 30년 만의 개편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브레이크를 걸고 정권이 아닌 노사에 최저임금 결정권을 준다는 것이지만 개편될 최저임금위가 중립성·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공개했다. 이 장관은 “국제노동기구(ILO) 최저임금 결정협약은 근로자 생활보장 기준과 고용목표, 경제적 요인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한다”며 “임금 수준, 사회보장급여 현황과 고용 수준, 기업 지불능력과 함께 경제성장률을 포함한 경제상황을 결정기준에 추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지불능력을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반영하겠다는 정부의 제도 개편안은 일본의 사례를 참조한 것이다. 사실상 정권 논리에 휘둘려온 최저임금을 노동시장에 맡긴다는 뜻이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근로자 생계비△유사 근로자의 임금△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 네 가지다. 이 장관은 “기업의 지불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통계로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통계청의 ‘기업생멸행정통계’ ‘경제총조사’,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실태조사’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위원회 구성도 바꾼다. 현재 최저임금위는 노사정(공) 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되는데 정부가 공익위원 임명을 독점해 사실상 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장관은 “ILO 국제기준을 반영한 결정기준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설정하고 공익위원도 정부의 단독 추천권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결정체계를 개편하면 현행 공익위원은 추천권자가 바뀌어 새로운 위촉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위원들의 교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개편안 초안에 따르면 최저임금위는 인상폭 상하한선을 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와 정해진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한다. 구간설정위는 전문가 9명으로 구성한다. 정부는 노사정이 각 5명씩 후보를 추천한 뒤 노사가 기피 인사를 각 3명씩 순차 배제하는 방식(1안)과 노사정이 각 3명씩 추천하는 방식(2안) 중 하나를 선택할 방침이다. 결정위는 현 최저임금위의 후신 격으로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하지만 위원 숫자는 축소된다. 정부는 노사 위원과 공익위원 수를 각각 7명으로 줄여 결정위를 총 21명으로 구성하는 방안과 각 5명씩 총 15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용부 장관이 가진 공익위원 추천권도 ‘국회 3명, 정부 4명(공익위원 7명 기준)’으로 분산된다. 아니면 노사정이 5명씩 추천한 뒤 노사가 각각 4명씩 기피인사를 지워 최종 7명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 장관은 이번 개편안에 대해 “최저임금 결정체계의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업의 지불능력을 반영하는 것은 결국 최근 2년간 29% 오른 최저임금(올해 시간당 8,350원)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인상 속도 조절’ 지시와 기업들의 거센 반발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다만 정부가 여전히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구간설정위원도 결국 노사 양측의 추천을 받아 구성할 수밖에 없는데 노사 대립 구도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편된 최저임금 결정구조는 공익위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기존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과는 질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여론 수렴을 거쳐 최저임금 개편안의 세부 내용을 확정한 뒤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3월 시작되는 내년 최저임금 논의에 적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 향후 일정은 가시밭길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은 9일 노동자 위원 워크숍을 열고 최저임금제 개편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 방안을 논의한다. 한국노총은 이날 “최저임금은 저임금노동자의 생명줄인데도 정부는 당사자인 노사와의 충분한 사전협의 과정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개악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제도 개악 이후 또다시 최저임금 제도 개악을 강행한다면 사회적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저지를 위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도 “(이번 개편안은) 재벌·대기업 등 재계의 압력에 굴복해 ‘최저임금 1만원’으로 대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라며 “전체 노동자 대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