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스토리] 김영태 KCFT 대표 "전기차 혁명 이미 시작...배터리용 동박 없어서 못팔죠"

'글로벌 1위' 독보적 기술력 앞세워
LG화학 등 배터리 5대 메이저에 납품
365일 공장 풀가동해도 물량 못맞춰
지난해 매출액 3,000억 돌파하기도
전기차 年 20~30% 크는 고성장 산업
배터리 대규모 투자 등 동박 미래 밝아
기술혁신 지속...초격차 회사로 키울것

김영태 KCFT 대표가 제품 샘플 앞에서 동박 사업의 미래성을 설명하고 있다. /안양=송은석기자

김영태 KCFT 대표가 제품 샘플 앞에서 동박 사업의 미래성을 설명하며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안양=송은석기자

김영태 KCFT 대표가 집무실에서 동박 사업의 미래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전기차 혁명은 이미 시작됐고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송은석기자

동박(銅箔·copper foil)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금박이나 은박 또는 알루미늄 포일은 누구나 알지만 동박 자체는 낯선 단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동박은 우리 생활현장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회로기판과 리튬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필수소재인 만큼 전자제품, 특히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된 휴대폰과 노트북 컴퓨터에는 동박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최근 들어서는 동박의 몸값이 더욱 올랐다. 해외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자동차용 고용량·고출력 배터리 수요가 늘었는데 이런 추세에 맞춰 동박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자동차 배터리용 동박기술 세계 1위 업체인 KCFT의 김영태(56) 대표는 7일 경기도 안양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전기차는 연평균 30% 성장하는 고성장 산업”이라며 “배터리 수요가 함께 성장하면서 배터리 제조의 필수재인 동박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KCFT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앞세워 LG화학과 삼성SDI, 중국 CATL과 BYD, 일본 파나소닉 등 세계 배터리 업계 5대 메이저에 납품하고 있다. 365일 24시간 전북 정읍 공장을 풀가동해도 제품이 달릴 정도다.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1,000억원대에 머물던 매출이 지난해 3,000억원을 넘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원가 중 동박이 5~6%를 차지해 배터리 산업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동박 사업도 커진다.

이 회사는 원래 LS엠트론의 동박사업부였다가 지난해 사모펀드 KKR에 매각되면서 사명을 KCFT로 한 뒤 독립했다. LS엠트론 사업부장이었던 김 대표는 동박 사업을 맡은 후 지난해 KCFT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김 대표에게 전기차의 비전을 믿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전기차 보급이 정체되면서 내연기관차 시대가 지속되거나 미래차의 트렌드가 대용량 전지가 들어가지 않는 수소연료전지차로 점프한다면 동박 사업의 미래도 밝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구나 전기차는 비싼 배터리 가격 때문에 현재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정부 보조금이 붙을 수밖에 없다. 보조금이 끊기면 홀로 설 수 없는 사업이라는 얘기다.

“전기차 혁명은 벌써 시작됐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이 전기차 사업에 다 뛰어들었어요. 우선 배터리 성능이 좋아졌고 배터리 업계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가면서 제품 가격도 내려가고 있지요. 이런 추세라면 보조금이 없어져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가격 우위를 갖는 때가 수년 내에 도래할 겁니다.”

김 대표가 전기차의 미래를 확신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세계 배터리 업계는 진입장벽을 치기 위해 대규모 선제투자를 한 상태다. 현재도 공장 가동률이 70~80% 수준이다. 최근 독일 폭스바겐그룹이 60조원어치의 배터리를 발주한 것처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앞으로 주문 물량을 늘리면 배터리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제조단가는 더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현재의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차에서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들어내고 배터리와 모터를 장착한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기차는 전용 플랫폼을 채용해 에너지 효율을 더욱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전기차 주행거리가 길어지고 충전시간은 짧아지는데 가격은 내려가 수요가 늘게 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전기차를 건너뛰고 수소연료전지차로 직행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대·기아차도 수소차에 미래를 걸고 있고 정부 역시 전기차보다는 수소차 쪽에 지원을 집중하는 편이다. 김 대표의 생각은 어떨까.

“수소차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수소를 얻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충전소를 짓는 데도 주유소 대비 10배의 비용이 듭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이미 6,000개 이상의 전기차충전소가 있어요. 전기차 사업에는 세계적으로 고급인력과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대대적인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수소차가 허들을 넘으려면 만만치 않은 시간과 물적 자원이 투입돼야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수소차는 니치마켓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합니다.”

국가 경제 전체로 봤을 때도 전기차용 배터리 산업의 의미와 중요도가 크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배터리는 전자산업이 있는 분야 어디에서든 꽃을 피운다”면서 “한중일 3국이 리튬이온 배터리 헤게모니를 갖게 됐고 오래 전 전자산업의 주도권을 아시아에 내준 유럽과 미국은 배터리 관련 인력과 기술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산업계는 전기차 배터리를 제2의 반도체로 보고 막대한 선제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고도의 기술과 설비 투자로 진입 장벽을 쳐둬야 전기차 시대가 열렸을 때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메이커가 이 회사와 8,000억원 규모의 장기(4년) 공급 계약을 맺은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KCFT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게 됐을까. 여기에는 김 대표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LS엠트론의 동박 사업은 만성적자였습니다. 그래서 회로기판용 동박 사업을 접고 배터리용 사업만 남겼습니다. 그렇게 배수의 진을 치고 기술개발에만 매달렸습니다. 고난의 시기였지요. 그러나 훗날 이 시기에 연마한 기술이 고객으로부터 확실한 평가를 받았어요. 2011년에는 파나소닉 전신인 산요로부터 단 5톤 수주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난해에는 2만톤 가까이 수주했습니다. 2015년에는 파나소닉으로부터 품질 우수상까지 받았죠.”

동박 만드는 데 무슨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선 기술장벽 자체가 높다. 동박은 얇을수록 좋다. 동박에 활물질(活物質)을 바르는 방식으로 배터리의 음극재를 만들기 때문에 동박이 얇을수록 배터리의 무게와 부피가 줄어든다. 동박은 길수록, 넓을수록 좋다. 주방용 알루미늄 포일을 생각하면 쉽다. 포일 폭이 넓으면 보다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고 동박을 길게 말아놓은 장권취(長捲取) 제품일수록 롤을 자주 갈아 끼우지 않아도 돼 배터리 제조사의 시간과 비용을 크게 낮춰준다. KCFT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5㎛의 제품을 양산하는 유일한 회사다. 1㎛는 0.001㎜이니 사람의 머리로는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얇다. 이 얇은 동박을 세계에서 가장 넓은 1,300㎜ 넓이로 만들어 무려 30㎞ 길이를 구김 없이 말아 감는다. 다른 업체들은 아직 7~8㎞밖에 감지 못하는 수준이다. 고난의 시기에 기술에만 매달려 ‘시니스트(Thinnest), 롱기스트(Longest), 와이디스트(Widest)’를 달성했다.

김 대표는 기술밖에 모르는 연구원 출신이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금성전선 중앙연구소에 입사해 전선용 소재와 합금소재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동박 연구와는 지난 2000년 인연을 맺었다. LG금속의 동박 사업이 금성전선 후신인 LG전선으로 넘어오면서다. LG그룹과 LS그룹이 분할한 후에는 LS전선과 LS엠트론으로 소속을 바꾸며 동박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LS엠트론 동박사업부장이 된 것은 2010년이다. 마음속으로는 ‘경영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어느 날 아무런 준비 없이 경영 임원이 된 것이다. 그는 정읍공장에서 2~3년간 별을 보며 퇴근하면서 경영을 배우고 사업의 토대를 닦았다고 한다.

“그때로 돌아가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습니다. 경영의 모든 것이 생소했습니다. 정읍에 떨어져 있다 보니 경영에 대해 모르는 것을 상의할 상대조차 없었어요. 생산·품질·노무 등 모든 업무를 처음 해봐야 했는데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니까 경영 전문서를 보고 혼자 공부했습니다. 책에서 힌트를 얻어 현장에 적용해보고. 경영을 책으로 배운 거죠. 그러니 고난도 많고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 대표는 ‘기술도 알고 경영도 아는’ 테크 기반의 경영자가 됐고 동박 비즈니스의 본격적인 상승기를 맞아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에게 미래 비전을 물었다. 김 대표는 가장 얇고, 길고, 넓은 동박을 만드는 세계 1위 경쟁력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동박은 세계적 저성장 시대에 몇 안 되는 고성장 품목이라 앞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기술 1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다.

“전기차는 최근 연평균 30%씩 성장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연간 20~30% 성장하는 산업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도 아직 세계 자동차의 단 2%만이 전기차입니다. 이 비중이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배터리 수요도 엄청나게 성장하겠죠. 배터리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배터리에 사용되는 동박의 비율은 크게 바뀌지 않아요. 앞으로 동박 분야에 대규모 자본과 인재가 투입되고 업체 간 경쟁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 대표는 “한국이 소재 분야에서는 유럽과 일본에 뒤진다고들 하는데 KCFT는 전지용 동박 분야에서 확실한 세계 1등”이라면서 “2위와의 격차를 더 벌려 초격차 회사를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안양=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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