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19부는 11일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기업 히타치조선이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또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9부(고의영 부장판사)는 11일 이모(96)씨가 일본 기업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에 이어 “이씨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1944년 9월 국민징용령으로 일본 오사카에 있는 히타치 조선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휴일 없이 거의 매일 8시간씩 방파제 보수공사 등의 일을 해야 했다. 회사는 고국으로 월급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받지 못했다. 이씨는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한 뒤 밀항선을 타고서 겨우 귀국할 수 있었다.
이씨는 2014년 “강제노역 등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 결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오자, 히타치조선 측은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965년 맺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히타치조선 측 주장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노역에 동원된 피 징용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이씨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소송을 제기할 때까지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고, 2012년 5월 대법 판결로 장애 사유가 소멸했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으로 볼 수 있는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히타치조선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자료 5,000만원도 적정한 금액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이씨가 강제징용돼 귀국까지 1년 정도 소요된 점, 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이씨를 불법적으로 징용하고 생명과 신체에 대한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원치도 않는 노역에 종사하게 한 불법성의 정도, 패전 이후에도 이씨를 방치해 이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밀항해 귀국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