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취재진 질문에 아무 말 없이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1일 출석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징용소송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 고위 인사들이 연루된 징용소송 재판거래 의혹은 수십 개의 옛 사법행정 수뇌부 범죄 혐의 가운데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징용소송과 관련한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에 대해서 피의자 신문을 하고 있다. 검찰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된 직후인 2013년 9월 외교부 입장에서 재판의 방향을 구상한 법원행정처 문건을 보고 받았는지,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기존 대법원 판결에 외교부가 제기한 민원을 다른 경로로 받아들였는지 캐묻고 있다. 임종헌(60·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차한성(65)·박병대(62)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사법행정을 담당한 법관들이 청와대·외교부와 재판절차를 논의할 때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는지, 2015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진 독대에서 징용소송과 상고법원 설치에 대한 논의를 주고받았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모 변호사를 대법원장 집무실 등지에서 직접 만나 전원합의체 회부 등 재판계획을 알려준 정황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유력하게 증거한다고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조사에서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사실상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징용소송 절차에 직접 개입한 물증과 관련자 진술을 대거 확보한 이상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검찰은 징용소송 관련 신문을 마치는 대로 양승태 사법부가 사법행정이나 특정 판결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선별해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할 방침이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