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첫 경제진단 보고서에서 경기 불확실성 요인 중 하나로 반도체 산업을 언급했다. 경제진단 보고서에서 경기 불안 요소로 특정 업종을 지목한 것은 처음이다. 취약한 주력산업 사이에서도 수출 효자 노릇을 하며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반도체가 이제는 정부의 관리를 필요로 할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수출 효자였던 반도체에 켜진 ‘빨간불’=기획재정부는 11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월호에서 한국 경제 상황을 두고 “전반적으로 수출·소비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투자·고용이 조정을 받는 가운데 미·중 무역갈등, 반도체 업황 등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수출액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를 경기 불안요소로 특정했다는 점에서 충격은 클 것으로 보인다. 고광희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반도체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니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보고 예의 주시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부가 반도체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뜻을 내보인 것은 최근 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은 탓이다. 최근 2년 간 이어진 슈퍼 사이클(초호황) 속에서 국내 수출의 효자로 불렸던 반도체 시장의 분위기는 지난해 4·4분기부터 급격히 달라졌다.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와 각종 투자 지표 등에서 업황 둔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실제 이날 관세청이 발표한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 1~10일 반도체 수출액은 27.2%나 줄었다.
◇어두운 전망…회복시기 불투명=시장의 전망은 밝지 않다. 반도체 가격은 하락하고 있고, 수요도 줄어드는 추세다. ‘반도체 굴기’를 앞세운 중국의 도전도 거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수 있던 것은 주력인 D램 시장에서의 선전 덕분이다. 두 회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각각 43.6%와 29.9%로 압도적이다. 영업이익률도 50%를 웃돌았다. 문제는 올해부터다.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를 지난해(4,780억달러)보다 2.6% 증가한 4,901억달러로 전망했다. 지난해 성장률이 15.9%였음을 고려하면 “잔치는 끝났다”는 말이 나올법한 수준이다. 수요가 줄면 D램 가격 하락은 뻔하다. 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는 1·4분기 D램 가격이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회복시기도 불투명하다. 데이터센터를 늘리기 위해 서버용 D램을 대량 구매했던 구글이나 아마존 등의 투자 재개만 바라보는 형편이다. 박영삼 산업부 전자부품과장은 “데이터 센터의 투자 휴지기라는 게 9개월 정도”라며 “지난해 4분기부터 줄여왔으니 올해 상반기까지는 어렵겠지만 하반기에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부메랑 된 쏠림…다음 타자가 없다=결과적으로 반도체 부진은 우리나라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간 수출액은 6,054억7,0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반도체를 뺀 나머지 주력산업은 오히려 역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반도체 연간 수출액은 전년보다 29.4% 증가한 1,267억1,300만달러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9%나 됐다. 주력산업인 자동차(-1.9%)와 선박류(-49.6%), 무선통신기기(-22.65) 등의 수출액이 오히려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의 뒤를 이을 차세대 산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산업 부진에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전체 수출액이 주는 착시현상에 빠져 구조개혁 시기를 놓친 결과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반도체가 성장세를 지탱하고 있지만 이것도 얼마만큼 지속할지 자신할 수 없다”며 “반도체 경기가 급락하고 일부 어려움을 겪는 업종에서 치고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세종=정순구·강광우기자 임진혁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