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비리' 대법 전직 직원에 들러리 서준 업체들 무더기 재판에


대법원의 정보화사업 과정에서 벌어진 500억원 규모 입찰 비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전·현직 법원직원과 납품업체 관계자 등 15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14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구상엽 부장검사)는 법원행정처 과장 강모·손모 씨와 행정관 유모·이모 씨를 입찰방해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4일 강씨와 손씨, 유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이씨는 부정처사후수뢰 혐의로 구속기소했었다. 이들은 전직 법원행정처 직원 남씨에게 법원 내부 기밀을 빼주어 관련 사업을 수주하게 하고 총 6억3,000만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검찰은 남씨에 대해서도 입찰방해 혐의로 추가 기소 했으며, 전산장비 납품업체 관계자 10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남씨는 지난달 2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 됐으며, 지난 4일에는 뇌물공여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검찰 수사에서 남씨는 200년 전산주사보(7급) 재직 시절 동료 직원들의 권유를 받고 퇴직해 납품업체를 설립해 전 동료들의 지원 아래 20년 가까이 관련 법원 발주 사업을 독점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 현직 직원들은 입찰 정보를 빼돌려 남씨에게 전달하거나, 특정 업체가 공급하는 제품만 응찰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등 계약업체를 사실상 내정한 상태에서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물화상기의 경우 가격이 10분의 1 수준인 국산 제품이 있는데도 남씨 관련 회사가 판매권을 가진 외국산 제품을 납품받았다. 남씨는 수입원가를 2배로 부풀려 500만원에 실물화상기를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입찰비리를 통해 남씨 관련 회사가 수주한 법원행정처 사업은 총 36건이며 계약금액은 497억원에 달한다.

그 대가로 강 과장은 5년간 총 3억1,000만원, 손 과장은 3년간 2억6,000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유씨와 김씨는 각각 6,700만원, 55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남씨 관련 업체에서 법인카드를 받아 생활비 등으로 3억원을 쓰고, 명절에는 5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TV 등 고급 가전제품과 골프채의 경우 모델명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해 받아낸 정황도 드러났다.

이날 함께 기소된 전산장비 납품업체들은 남씨로부터 납품 기회를 얻어내기 위해 입찰 때 들러리 역할을 맡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업계에선 남씨를 통하지 않고는 법원 전산화 사업을 수주할 수 없다고 알려져 남씨에게 줄을 대기 위해 뒷돈을 주거나, 남씨를 통해 사업을 수주한 뒤 남씨 업체에 상당 부분을 하도급 주는 방법까지 동원됐다”고 밝혔다.

입찰 비리가 10년 이상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수의 법원행정처 직원이 폐쇄적으로 입찰을 담당하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국가기관의 경우 조달청이 입찰업체에 대한 기술적 평가 등을 하지만 법원 전산화 사업의 경우 발주 제안부터 평가까지 모두 법원행정처가 관할해 조달청은 창구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입찰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내부감사를 벌여 지난해 11월 초 현직 직원 3명을 직위 해제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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