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혈세 낭비한 방통위의 황당한 재판

강동효 바이오IT부 기자


새해 들면서 인터넷·인터넷TV(IPTV) 광고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지인들이 호소했다. 수십만 원을 지원할테니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혹은 IPTV 업체를 변경하라는 광고였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유선 가입자 유치경쟁이 과열되는 현상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취재를 시작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과도한 경품 지급이 이용자간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17년 ‘경제적 이익 등 제공의 부당한 이용자 차별행위에 관한 세부기준 제정안’을 마련했는데 LG유플러스와 소송이 걸려 현재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제정안에는 경품제공과 관련 2~15만원의 상한 규제가 명시돼 있었다.

이 관계자는 16일 예정인 LG유플러스와 행정소송 2심 결과에 따라 대책을 내놓겠다고 언급했다. 승소할 경우, 해당 고시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상한 규제가 명시된 이 고시는 이미 지난 2017년 방통위가 보도자료를 배포해 언론에 이미 공개된 바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이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내보내자 인터넷 공간이 들끓었다. 방통위가 기업의 자율 경쟁을 막고 소비자 혜택을 축소하는 정책을 펴는 이유가 뭐냐는 등 항의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자 방통위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방통위는 이튿날 해명자료를 통해 “경품 상한제 도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통위가 재판을 앞두고 이같이 내놓은 해명자료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상한규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면 LG유플러스와 소송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015년 유선 결합상품을 판매하면서 방통위가 정해놓은 가이드라인 상한 기준을 초과했었고 방통위는 이를 적발해 과징금을 매겼다. 결합상품 제도개선안의 상한 기준을 초과한 경품 등을 제공해 이용자를 부당하게 차별했다는 것이 제재 이유였다. LG유플러스는 이에 반발해 방통위의 조치가 부적합하다며 소송을 시작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방통위는 1심 재판에서도 “LG유플러스가 일부 이용자에게만 상한 기준을 초과해 경품을 지급한 것이 이용자를 차별한 행위”라며 “단말기 유통법에서도 상한액을 초과하는 지원금을 금지한다”고 논리를 펼친 바 있다. 또 “일정 기준을 넘어선 경품 지급이 요금 인상을 불러온다”며 상한액 규제가 합당하는 논지도 전개했었다.

방통위가 상한 규제를 폐지한다고하면 2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LG유플러스가 법적으로 옳다라는 걸 자인하는 셈이다. 애초 자신들이 잘못한 행위와 관련 국민 혈세를 낭비하며 2심 소송까지 끌고 가는 황당한 일을 했다는 걸 고백한 것과 다름없다.

민간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 하나 해결하는데 진땀을 흘린다. 막강한 규제 권한을 지닌 방통위가 잘못된 정책임을 알고도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2심 소송까지 진행해야 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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