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이사회에 앞서 체육계 미투 사태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국위 선양의 요람으로 여겨졌던 국가대표 선수촌이 이른바 ‘체육계 미투’로 폭력·성폭력의 온상으로 드러나면서 오랜 합숙훈련 문화에도 대수술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15일 체육회 이사회 모두발언에서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성폭행 사태 등에 대해 사과하면서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중심에서 비롯된 도제식 합숙훈련에 대한 근원적인 쇄신책을 정부·시민사회단체와 긴밀히 협의해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메달을 포기하더라도 체육계의 온정주의를 폐지하고 (성폭력 등으로) 문제가 된 개인과 단체에 대해 사법기관 고발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발언 바로 다음 날 이 회장은 같은 의미의 폭력·성폭력 근절 실행대책을 내놓았다.
국가대표 선수촌은 51년간 이어진 태릉선수촌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 2017년 9월 진천선수촌 시대를 맞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최신식 선수촌을 짓는데 총공사비 5,130억원이 투입됐다. 체육회 연간 예산은 약 4,000억원이며 이 중 20%인 800억원이 선수촌 운영에 쓰이고 있다. 당장 선수촌 운영을 중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종목별로 선수촌 합숙 기간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체육회에 따르면 올해 종목별 선수촌 최대 훈련 일수는 260일이다. 올해는 내년 도쿄 올림픽 출전 포인트가 걸린 각종 대회가 잇따라 열리는 중요한 해지만 일시적인 국제대회 성적 부진을 감수하더라도 훈련 체계를 전면 개선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한편 이 회장은 체육계 비위에 체육회가 자정기능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며 앞으로 관련 사건의 조사를 전부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또 선수촌에 여성 부촌장과 여성 훈련관리관도 채용하기로 했다. 이날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사회가 열린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을 찾아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모두발언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쇄신하겠다”고 밝힌 이 회장은 1시간의 비공개 회의 뒤 사퇴 요구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채 건물을 빠져나갔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