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회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 서열 1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간 ‘강(强) 대 강(强)’ 충돌이 본격적인 ‘파워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는 29일 예정된 신년 국정연설을 연기하거나 서면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명분은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으로 인한 ‘경호 공백 우려’지만, 대통령이 의회에 나와서 국경장벽 예산 반영을 막고 있는 민주당을 대놓고 비판하는 정치적 선전 무대를 제공하진 않겠다는 의도가 내재돼 있다는 게 주요 외신의 분석이다.
16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오는 29일 국정연설 당일 경비계획을 세우고 이행하는 비밀경호국과 국토안보부가 연방공무원 일시 해고로 차질을 빚고 있다”며 “경비 우려를 고려할 때 만약 이번 주 연방정부가 다시 문을 열지 않는다면 정부 업무재개 이후 적절한 날을 다시 잡을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29일 서면으로 의회에 국정연설을 전달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덧붙였다. 펠로시 의장은 예산안이 시한 내 의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즉시 가동이 중단되는 현행 예산시스템이 1977년 도입된 이후 셧다운 기간에 대통령 국정연설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명분은 ‘경호 우려’지만 펠로시의 이 같은 강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빨리 셧다운을 끝내라는 일종의 압박 메시지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특히 국정연설이 주요 방송대 황금 시간대인 오후 9시 생중계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정 비전 등을 강하게 설파할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펠로시 의장의 (국정연설 연기 또는 서면 제출) 제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프라임 타임 TV 연설에서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의 필요성을 주장할 기회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NN은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이번 서한을 ‘파워 플레이’로 칭하며 “펠로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회가 행정부와 동등한 권력 기구이고, 대통령이 국경 장벽 예산을 받아낼 때까지 정부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대통령 본인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것을 각인시킨 것”이라고 전했다.
하원 의장은 대통령을 의회에 초청해 대통령이 의회 국정연설을 하는 데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의사당에 모인 상·하원 의원 앞에서 국정연설을 하는 날짜와 시간은 하원 결의안에 담긴다. 하원과 상원 모두 이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이 확정된다. 아직 하원과 상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1월 29일 초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하원에서는 의장이 언제 이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펠로시가 마음만 먹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막을 수는 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