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양승태(사진) 전 대법원장에 대해 소환 조사한 지 일주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법부 수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구속영장 청구 사실만으로도 사법부의 위신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18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가법상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은 핵심 범죄 혐의들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것을 넘어 직접 주도했다는 것이 진술과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며 “최종적 결정권자이기에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원장을 통틀어 처음으로 검찰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은 데 이어 구속 기로에 놓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을 지연시킨 뒤 청와대와 거래하는 데 관여하고 법원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준 혐의 등을 받는다. 또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있다. 검찰이 작성한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서는 무려 260여쪽에 달한다. 이는 90여쪽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 200여쪽의 이명박 전 대통령, 230여쪽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보다도 많은 분량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르면 오는 22일께 열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로 했다.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해온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혐의 사실관계는 물론 직권남용 등에 대한 법리 싸움도 치열하게 벌일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21일 오전 담당 재판부와 심사 일정을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할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매우 중대하기에 구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에 무게를 둘 수도 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으나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전체 영장전담 판사 5명 가운데 이미 사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진 이언학 부장판사를 비롯해 박범석·허경호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근무 경력이 있다는 점 때문에 영장심사 법관으로 배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검찰 출신의 명재권 부장판사나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없는 임민성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영장실질심사를 나눠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