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 "연극 공장의 담장, 점점 더 낮아질겁니다"

연극인·관객·시민과 소통하며
관심 받는것이 올바른 공공극장
현장 경청·서포터즈 운영 등 힘써
올해 작품들, 시대 물음에 화답
꼭 봐야할 연극은 '콘센트-동의'

이성열 감독은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대의 물음에 화답하는 작품들로 올해 라인업을 짰다고 말했다. 7/권욱기자

최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립극단의 명동예술극장을 케이팝 콘서트장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연극계에는 한바탕 폭풍이 일었다. 관광업계가 이달 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용도변경을 제안했고 이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의견 검토를 권고하면서 또 한 차례 상징성 큰 연극 전용 극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그야말로 연극계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결국 문체부가 국립극단은 연극전용극장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입장문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연극인들에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대중과 호흡하고 동시대 화두를 담는 연극 공간으로서 명동예술극장의 역할과 의미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물론 이는 재작년 11월 취임한 이성열(사진)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줄곧 내세운 과제기도 하다.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시민과 연극인들을 위한, 영양가 높고 맛 좋은 빵(연극)을 만드는 공장장을 자처했던 이 감독은 지난 1년여간 명동예술극장은 관객 중심의 레퍼토리 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은 작가 중심의 창작 극장, 소극장 판은 연출가 중심의 실험극장으로 각각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권욱기자

최근 서울 서계동 집무실에서 만난 이 감독은 “1년간 좋은 작품이 관객을 통해 완성되고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했다”며 “올해 역시 그 연장선에서 다양한 연극 실험과 작품 개발 공장으로서 각 극장의 브랜드를 강화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후 1년은 블랙리스트 사태와 연극계 미투 사태를 수습하느라 한 걸음 내딛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국립극단은 여타 극단과 제작극장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좋은 작품과 기획으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이 감독은 직접 연출한 연극 ‘오슬로’로 올해 국립극단 초연 작품 중 최다 관객수를 기록했고 월간 한국연극 선정 베스트7에 선정된 것은 물론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동아연극상 무대예술상까지 거머쥐었다. 여기에 근현대극 ‘운명’과 ‘호신술’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지역 문화 교류 확대를 위해 처음으로 지역문화기관과 공동 제작한 ‘텍사스 고모’도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연기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올 한 해 또 한 차례 연극 성찬을 차리면서 이 감독이 주안점을 둔 것은 1987년 이후 또 한 차례 분수령을 맞는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질 연극을 선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감독은 “늘 정치·제도적 변화는 사회적 변화를 수반하며 완성되는데 우리사회는 2017년의 정치·제도적 변화 이후 뒤따르는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블랙리스트, 미투, 세월호에 이어 남북관계 화해무드가 다양한 작품을 빚어낸 것처럼 지금 이 시대의 물음에 화답하는 작품들로 라인업을 짰다”고 귀띔했다.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의 뒷얘기를 다룬 연극 ‘오슬로’를 직접 연출하며 연극계 최고의 화제몰이를 했던 이 감독은 올해 구시대적 가치와 새로운 시대의 충돌을 그린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연출에 나선다. 연극계를 대표하는 중견연출가인 이 감독이지만 브레히트 연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계속적인 노력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겠지만 반드시 한 작품만 봐야 한다면 이 감독이 추천하는 작품은 ‘콘센트-동의’다. 젠더 감수성과 위계폭력 문제를 극화한 이 작품을 영국 런던에서 미리 접한 이 감독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극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지난 1년을 뜨겁게 달궜던 미투 이슈에 응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정 배경을 밝혔다.

좋은 빵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통일 시대를 대비해 남북 연극 교류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 북한 현대 연극을 소개하기 위한 연구 작업에도 착수했다. 내년 국립극단 70주년 준비 작업도 주요 과제다.

물론 이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제는 따로 있다. 무릇 좋은 공장장이라면 양질의 빵을 더 많은 사람이 먹기를 꿈꿔야 하는 법이다. 이 감독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담장까지도 낮추려 한 이유다. 취임 직후 ‘어이 국립극단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우스꽝스러운 타이틀로 현장 연극인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꾸지람을 듣는 자리를 만들었고 대학생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가 하면 지난해 9월부터는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공연 프로그램북을 전면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올바른 공공극장이라면 현장 연극인은 물론 우리의 관객, 시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두 그룹 모두에게 지지를 받고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유수의 국립극단을 보면 연극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도 1년에 한 두 편은 꼭 봐야 하는 연극 공간으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국립극단이 할 일은 더 많은 사람이 국립극단에 접근하도록 담장을 허무는 겁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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