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토요일 오후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몇㎞에 걸쳐 형성된 대학 입시 학원가에서 부모들이 무단 주정차를 하고 있다가 자녀들을 픽업하느라 바쁘다. 자녀들도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이다. 도로와 골목길 곳곳이 명절 고속도로처럼 꽉 막히고 곡예운전이 벌어진다.
공교육이 표류하는 통에 대한민국 대표 사교육 1번지에서 매일 밤 빚어지는 풍경이다.
요즘 JTBC 인기 드라마 ‘SKY 캐슬’에서도 자녀에게 대치동 코디를 붙여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 일체를 맡기는 사례가 나온다. 이 코디는 수십억원을 받고 서울대 의대를 보내주기로 한 아이가 2학년 1학기 때 전교 2등을 하자 다음 학기에 아예 학교 시험지를 빼내 1등을 만드는가 하면 그 비밀을 알게 된 다른 아이를 청부 살해하기도 한다. 물론 가상의 설정이지만 사교육 광풍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줘 씁쓸하기 그지없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내신과 학종·수능 등 대학 입시전형이 너무 복잡해 학생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내신과 수능시험 유형마저 딴판이라 아이에게는 이중고다. 자연스레 사교육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집계한 초중고생 1인당 사교육비가 월 27만1,000원(2017년 기준)이라는데 중산층의 체감 사교육비는 이보다 족히 3~5배는 많다. 자녀와 부모의 행복지수가 떨어지고 소비도 활성화될 수 없는 구조다.
입시 위주로 교육정책이 진행되다 보니 특성화고 등은 제대로 자리 잡기 힘들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구분하는 사회적 편견도 여전해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치열한 과정을 거쳐 대학의 좁은 문에 골인해도 심각한 취업난을 뚫기 위해 4년 내내 학점과 스펙 쌓기에 올인해야 한다. 소위 ‘SKY대’마저 온라인 커뮤니티에 “‘너는 스카이 나와 취직도 못하냐’고 하니 정말 잠이 안 온다”는 애로를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문제는 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과 고령화 시대에 적응할 융합형 인재를 기르는데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여전히 학과 간 칸막이가 높고 변화를 주도하지 못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 지방대는 서울집중과 저출산 심화로 무너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대학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산학일체로 가거나 교수·학생의 창업을 적극 끌어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 실제 2016년 기준 대학의 기술이전 수입을 보면 포스텍이 1등을 차지했지만 51억원에 불과하고 서울대(48억원), 성균관대(38억원), 고려대(36억원), KAIST(27억원), 연세대(18억원) 등으로 뉴질랜드 오클랜드대(2,000억원가량)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전체 대학의 절반가량은 아예 기술이전 수입이 특허유지 비용보다도 적은 실정이다. “대학 교육이 30년 전에 비해 근본적으로 뭐가 달라졌는가”(김도연 포스텍 총장)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도 일부 대학에서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포스텍은 지난해 신입생부터 과 불문 없이 뽑아 교양교육을 시킨 뒤 4학기부터 원하는 대로 과를 선택하고 이후 학과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안산)는 분교 형태를 넘어 산학연 클러스터의 모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 등의 총장이 이공계 출신이 된 것도 시대적 흐름과 맞물린 결과다. “미래를 살아갈 학생을 과거와 같이 교육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던 미국의 존 듀이(철학자 겸 교육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Run away with me, It’ll be the way you want it(나와 함께 도망쳐, 네가 원하는 게 이 길일 거야).” ‘SKY 캐슬’의 주제가(We all lie·우리 모두는 거짓말한다)에 담긴 가사처럼 대학의 파괴적 혁신을 기대해본다. 미국 미네르바스쿨이 캠퍼스 없이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세계 주요도시를 옮겨 다니며 기업과 사회 현장에 뛰어들게 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