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의 4차 산업혁명] 관료제 평가시스템 쇄신하자

공무원부터 감사원·국회까지
관료제 평가로 규제 칼 앞세워
미래 비전 갖춘 리더 적극 육성
시스템 바꿔야 스마트규제 가능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117>스마트 규제가 혁신을 키운다


한 달 전 워런 데이비드슨 미국 하원의원이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을 ‘디지털 토큰’으로 정의해 일률적인 증권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토큰 분류법(Token Taxonomy Act of 2018)’을 제출했다. 미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증권과 같이 규제하려면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법안 자체가 아니라 법안 제출 성명서다.

데이비드슨 의원은 성명에서 “인터넷 초창기 시절 의회는 시장을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유혹을 이겨냈고 시장에 확실성(certainty)을 부여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를 통해 미국은 3차 산업혁명의 승자가 됐다”며 “이때와 같은 승리를 또다시 미국 경제에 가져오고 이 혁신적인 산업에 미국의 리더십을 가져오는 것이 블록체인 암호화폐 법안 제출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블록체인에 대한 규제 법안은 없다. 그런데 암호화폐 산업은 붕괴했다. 심지어 암호화폐 관련 벤처는 대출과 건물 임차조차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령 미근거 규제가 법치국가에서 태연히 벌어지고 있다. 3년 전 핀테크 도입기 한국에서도 700개가 넘는 핀테크 기업이 등장했다. 그런데 대부분 고사했다.

규제도 있으나 법령 미근거 규제가 더 큰 장벽이었다. 원래 법령은 법과 시행령과 시행세칙까지다. 금융위원회가 시행세칙 이하의 행정고시로 민간을 규제하는 것은 당연히 위헌으로 봐야 한다. 행정고시는 행정부 내부에만 적용돼야 하고 민간에 적용하려면 시행세칙화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은 행정기관이 아닌데 내부 규준이라는 실질적 규제로 핀테크 벤처들을 꼼꼼히 통제해왔다. 그리고 한국의 핀테크 산업은 중국에 완패했다.

유럽과 미국의 신산업 규제는 스마트 규제(smart regulation)로 대변된다. 대부분의 신산업은 불확실성의 영역에 있다. 섣부른 규제는 미래의 황금알을 죽이게 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은 거품 속의 황금알이다.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사전 규제가 아니라 사후 평가로 가는 스마트 규제가 4차 산업혁명의 신산업 규제 방향이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게 된다. 데이비드슨 의원이 선포한 ‘인터넷 버블 당시 과도하게 시장을 규제하려는 유혹을 이겨냈다’는 문구와 반대되는 정책을 한국은 전개했다. 미래에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쇠뿔을 교정하려다가 소를 죽이고 만 사태가 지난 2002년 시작된 ‘벤처 건전화 정책’이다.

2000년 당시 미국의 나스닥과 한국의 코스닥은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붕괴했다. 소위 인터넷 거품의 붕괴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완전히 반대로 대응했다. 미국은 새로운 규제를 가하지 않은 결과 아마존·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의 거대한 인터넷 기업을 키워낸 반면 한국은 코스닥 통합, 벤처인증제 보수화, 주식옵션 보수화, 기술거래소 통합을 포함한 과도한 규제로 벤처의 10년 빙하기를 초래했다. 그 결과가 한국을 배워 간 중국에 우리가 배우러 가게 된 것이다.

혁신으로 가는 길은 황금알과 거품이 혼재된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비전 없이 문제만 보면 전가의 보도인 규제의 칼을 빼게 돼 있다. 규제는 공무원에게 권력과 예산을 가져다준다. 탈규제를 통한 혁신은 감사원의 감사와 문제에 대한 책임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국회는 법안 제출이 실적이므로 규제 법안을 양산한다. 이러한 관료제의 평가 시스템을 혁신해야 우리는 비로소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의 지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문제는 국민과 리더 중 누가 시스템 혁신을 주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국민은 관성이 크다. 결국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리더가 미래 지향적인 시스템 혁신의 해결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과거 지향이 아니라 미래 비전의 리더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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