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 ‘알함브라’ 차좀비 박훈의 신념 “사람이 제일 중요하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사람에 대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그야말로 스태프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명 ‘차좀비’로 불리며 죽어도 죽지 않는 NPC로 열연한 배우 박훈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정말 스태프들의 작품이다”고 행복한 종영 소감을 전했다.

최근 강남 삼성동 알코브호텔 서울에서 만난 박훈.그는 “이번에 촬영을 하면서 팀 작업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팀 작업의 가치를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에서 박훈이 연기한 차형석은 공학박사이자 유진우(현빈)의 친구로 등장한다. 차형석은 유진우와 대결 이후 실제로 죽음을 맞이한 뒤 미스터리한 존재로 AR(증강현실)게임 속에서 다시 부활, 끊임없이 유진우 앞에 나타나며 거침 없는 공격을 퍼부어 긴장감 유발자로 등극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인물로 연속해 등장하자 ‘차좀비’라는 애칭도 생겼다.

배우 박훈/사진=양문숙 기자

배우 박훈/사진=양문숙 기자

“시청자들 사이에서 차좀비로 통하고 있다’고 하시더라. ‘차좀비’라는 애칭을 받고 재미를 드렸다는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다만 매 장면마다 죽어 나가니 어머니께서 혼란스러워 하셨다. (웃음)한 작품에서 죽은 건 김갑수 선배님 이후로 최다 기록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 상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다. 박훈은 처음 캐스팅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이런 역할인지 몰랐다. 2부 3부에 죽는다는 정보를 듣고 특별 출연인 줄 알았을 정도.

“ 제가 들은 정보로는 2부 혹은 3부에 죽는다고 내용 정도였다. 그래서 당연히 특별 출연인 줄 알았다. 실제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초반 작품 내용이 많은 부분 오픈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디션이 진행됐다. 사실 저는 작가님, 감독님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작품 대박나길 바라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굉장히 편안 마음으로 오디션에 임했다. 4회까지 대본을 주셔서 읽을 때에는 ‘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왜 살아나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으니까.”

사실 박훈의 사망 소식이 그려지자, 가장 놀란 이는 가족들. 가족들은 ‘잘린 것 아니냐’는 리얼한 반응을 내보였을 정도. 부모님이 ‘1년을 해외 촬영한다고 돌아 다녔는데 어떻게 3부 만에 죽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제가 제작발표회에도 참석했었는데 3회만에 죽어서 가족들이 다들 충격에 빠지셨더라. 가장 큰 충격을 받으신 분은 어머니셨다. 어머니께 이해를 시켜드리고 싶었는데 설명을 못했다. 게임 규칙을 잘 모르셔서 정확히 이해가 힘든 부분이 있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재방송을 틀어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번 또 재방송한다고 하시더라.”

차형석은 극 초반 사망해 후반까지 대사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더 많다. 동일한 장면과 동일한 모습으로 등장한 차형석이었지만, 그 안엔 박훈 배우와 스태프들의 엄청난 노력이 담겨 있었다. NPC(Non-Player Character) 개념으로 출연해서 감정의 변화가 있으면 안 되는 게 맞는데, 패턴이 반복이 되기 때문에 배우로서는 큰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배우 박훈/사진=양문숙 기자

배우 박훈/사진=양문숙 기자

“쉽지 않은 연기인 게 사실이었다. 살아있는 분을 연기하듯이, 표현은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매번 똑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차형석의 표정, 감정, 심지어 의상도 다 달랐다. 다른 의미로 만들어냈다. 표정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 것을 택했는데 미세하지만 다 다른 의미로 표현하려 노력했고 그렇게 봐주셔서 다행이었다. 시청자 분들이 처음에는 ‘무섭다’는 말부터‘ 짠하다’, ‘불쌍하다’로 반응을 해주시는 걸 보며 살아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과정을 승화한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

작품 속에서 박훈의 의상은 20 여벌 가까이 된다. 외부적으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지만, 형석이가 죽는 모습들을 매번 다르게 담아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었다. 박훈은 “보시는 분들은 잠깐일 수 있지만 차형석이란 캐릭터를 위해 스태프들이 준비하는 시간은 상상초월이었다” 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야말로 스태프들의 작품이다”며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렸다.

“사실 죽는 건 잠깐이고 형석이 죽을 때마다 같은 의상을 입은 것 같지만 매번 옷이 달랐다. 피가 면에 닿으면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탁을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는 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 그때마다 새로 제작을 하고, 데미지를 입은 표시도 연결해서 만들어낸 의상들이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나오면 CG팀이 대기하고, 분장팀이 피 연결을 맞춰주고, 조명팀이 번개를 치고, 음악팀이 음악을 깔고, 촬영팀은 안 나왔던 새 각도를 찾아야 했다. 살수차까지 준비해야 하니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저 하나 죽는데에 3~4시간의 준비가 필요한 현장이었다. ”

국내 드라마 최초로 AR소재에 도전장을 던진 신선한 드라마로 화제가 높았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고 선보이며 드라마 장르의 지평을 연 송재정 작가는 스페인이라는 이국적 배경에 게임 서스펜스를 덧대어 새로운 드라마 세계를 열었다. 그렇다면 배우들이 느끼는 신선함은 어느 정도 였을까.

“처음에 대본을 받아보고 신선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연기라는 건 동떨어지는 건 아니구나란 걸 느꼈다. 저희가 ‘아이언맨’을 본다고 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똑같은 유머를 구사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떤 리얼리티를 느끼듯이 똑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소재나 상황 자체가 특수한 건 너무 큰 장점이다. 배우로선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는 CG와 실사의 밸런스를 잘 구현해낸 안길호 감독의 노력이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했음을 강조했다. “CG 같은 실사, 실사 같은 CG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춰주신 감독님 덕분에, CG이 실사가 아니냐고 물어보시거나, 실사 장면을 놓고 CG를 입힌 게 아니냐고 물어보시더라. 안길호 감독님이 택한 방법은 실사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CG 같은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워낙 탁월한 연출력을 지닌 분이시다.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결말을 놓곤 시청자들의 비난과 질타를 이어진 것도 사실. 갑자기 버그가 돼 사라진 유진우(현빈)가 게임 속에서만 살아있는 듯한 모습이 그려지며 열린 엔딩이 아닌 무성의한 엔딩이란 비난이 쏟아진 것. 이를 놓고 박훈은 “놀라움과 아쉬움 그리고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 이 모든 감정이 공존 할 것 같다는 평을 내 놓았다.

“결말을 보시고 나선, 기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라면 아쉬움도 존재할 것이고, 놀라움도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어떤 분들은 16부작으로 안 끝나고 또 다른 17부 혹은 다음 시즌이 있나? 하는 기대감이 생길 것 같다. 분명히 그럴 만한 결말이다. 다음이 궁금해지는 결말이었다. 저도 그렇게 읽었다. ”

박훈은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2007)로 연기에 입문한 후 ‘유도소년’ 등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고, 2016년 KBS2 ‘태양의 후예’를 시작으로 매체연기를 시작했다. SBS ‘육룡이 나르샤’(2016), MBC ‘투깝스’(2017), SBS ‘조작’(2017), KBS ‘맨 몸의 소방관’(2017)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 박훈은 “때론 칭찬을 받는 것처럼 비판도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를 잘 발전 시켜 나가야 싶다”는 소신을 전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삶의 원칙은 배우 박훈으로서도, 인간 박훈으로서도 변하지 않는 철칙이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함께 작업하는 분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서 밝아졌으면 좋겠고 즐거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기를 한다. 연극 할 때도 마찬가지죠. 제가 뭘 해보고 싶다기 보단, 저에게 주어진 걸 잘 해내야죠. 어느 정도 시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은 건 나중에 해볼 수 있지 않나. 저에게 주어진 걸 잘 해내서, 시청자분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 역시 최선을 다한 스태프들을 볼 때 마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배우 현빈, 박신혜 씨 외에도 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것. 그게 제일 감사하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