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지난 4일 공개한 광개토대왕함 상공에 저고도로 진입한 일본 초계기 모습. /연합뉴스
군 당국은 23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P-3C)가 이날 남해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우리 해군 구축함(대조영함·4,500톤)을 향해 근접 위협 비행을 했다며 일본 측을 강력 규탄했다.
‘레이더 갈등’과 맞물린 일본 초계기의 근접 위협 비행이 문제시된 상황에서 유사 사례가 확인됨에 따라 한일 방위 당국 간 긴장과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근접 비행을 한 것은 이 같은 행동이 결코 한국에 위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국 내 보수세력을 결속시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군사 대국화의 계기를 만들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 도중 일본 초계기가 이어도 근해에서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근접 비행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 조치를 위해 급히 자리를 떴다.
그는 한일 ‘레이더-저공 위협 비행’ 갈등과 관련한 질문에 “일본은 아베 총리와 관방장관, 방위상, 외무상, 통합막료장(우리의 합참의장)까지 군사·외교와 관련된 모든 분이 나와서 (레이더 조사 문제를) 언급했다”며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은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오후2시3분께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해군 함정을 명확하게 식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리 약 540m, 고도 약 60~70m 저고도로 근접 위협 비행을 한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서 중장은 “지난해 12월20일 일본의 저고도 근접 위협 비행과 관련해 그동안 우리 한국은 인내하면서 절제된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올해 1월18일, 1월22일에도 우리 해군 함정에 대해 근접 위협 비행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일본 정부에 분명하게 재발방지를 요청했음에도 오늘 또다시 이런 저고도 근접 위협 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 함정에 대한 명백한 도발행위이므로 일본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초계기는 지난해 12월20일에도 조난한 북한 선박 구조에 나선 해군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저공으로 위협적인 비행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날 경계작전 중이던 대조영함은 일본 초계기를 향해 “귀국은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경로를 이탈하라. 더 이상 접근하면 자위권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20여차례나 경고통신을 했다.
초계기가 근접 위협 비행을 한 해역은 이어도 서남방 71노티컬마일(약 131㎞) 지점으로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해당한다.
일본 측은 이에 “우군국(우방국)이며 식별할 수 있는 항공기에 대해 자위권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경고통신)은 매우 부적절하며 철회를 요망한다”며 오히려 우리 측에 항의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5시께 주한 일본무관 2명을 조치해 일본 초계기의 근접 위협 비행에 항의했다.
이경구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육군 준장)은 일본 육상자위대 무관인 나가시마 도루 대령과 해상자위대 무관인 와타나베 다쓰야 대령을 국방부로 불러 일본 측에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모두발언에서 일본의 ‘저공 위협 비행’에 대해 “상황이 정리가 안 되고 진행되는 것에 대해 우려스럽게 생각하고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 국방부의 발표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교도통신은 고노 다로 외무상이 이날 강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 측이 주장하는 것 같은 근거리로는 비행하지 않았다”며 한국 국방부 발표에 대해 부인하며 “(한국 국방부의) 발표는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양국 외교장관은 외교 당국 간 의사소통을 긴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는 일치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앞서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도 이날 우리 국방부의 발표와 관련해 “정확하지 않다. 고도 150m 이상을 확보해서 적절한 운용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조영함은 이날 광학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로 일본 초계기의 근접 위협 비행을 촬영했지만 지난해 12월20일과 마찬가지로 추적레이더(STIR)를 가동하지는 않았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추적레이더를 가동하면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대조영함이 촬영한 동영상은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자에 따르면 지난 18일에도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해군 율곡이이함에 60~70m 고도로 1.8㎞ 거리까지 접근했고 22일에도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해군 노적봉함을 향해 30~40m 고도로 3.6㎞까지 접근했다. 18일과 22일에도 우리 함정은 접근하는 일본 초계기를 향해 각각 10여차례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취지의 통신을 했고 일본 초계기는 “정상적으로 비행 중”이라고 답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홍우선임기자·박우인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