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재벌 때리기보다 수익률이 먼저다

■김상훈 시그널팀 기자

김상훈 시그널팀 기자

-1.5%. 올해 처음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보고된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의 잠정치다. 이대로라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기금의 ‘실질가치’가 쪼그라든다. 실질가치 유지는 기금운용 원칙의 첫머리에 나온다. 대체투자 자산의 공정가치 산정이 끝나야 공식 수익률이 나오겠지만 지금까지 성적으로만 보면 역대 최악이다. 뒷걸음질 폭이 미증유의 위기감이 전 세계를 뒤덮었던 2008년(-0.18%)보다도 8배가량 크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위기감은 어떨까.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16일 기금운용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해외 주요 연기금 수익률은 우리보다 못하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금운용본부가 선방했다고 생각한다”는 안일한 평가를 내놨다. 국민 노후자금 10조원가량이 날아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그다.


상대적 선방인지도 미지수다.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성적표(0.9%)는 일본 다음으로 최악이었다. 9월 말 기준으로는 줄곧 비교되는 캐나다공적연금(CPPIB) 수익률 7.1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6%. 그 이후에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사정이 이런데 요사이 우리 사회는 국민연금을 탈법·위법을 저지른, 그리고 사회적 공분을 자아낸 재벌의 버릇을 고치는 도구로 삼아야 할지 말지에 대한 논란만 뜨겁다. 그나마 한진그룹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 적용을 놓고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가던 찰나 문재인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터져 나오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재벌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진보의 열망과 경영권이라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보수의 공격만 부각되는 진영 싸움으로까지 번진 상황. 국민 앞에 참담한 성적표를 고해야 할 복지부는 대신 재벌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정부의 선봉대에 서 있다.

다음달 1일 국민연금 기금위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여부를 확정한다. 기금위가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 3월 주주총회까지 소모적인 진영 싸움이 이어질 것이다. 지난해 공식 성적표가 나오는 것은 그 사이인 2월 말이다. ‘제1원칙’을 되새겨 운용 전략의 구멍을 메우는 일은 뒷전에 두고 기금운용 원칙에도 없는 재벌 길들이기에만 몰두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국민연금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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