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에선 디지털 전환이 화두다. 디지털 부문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과와 행보로 주목받고 있는 KEB하나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KEB하나은행은 2020년까지 디지털 기반 정보회사로 탈바꿈한다는 목표를 세울 정도로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이다. 한준성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부행장을 만나 KEB하나은행의 디지털 전환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한준성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부행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본점 부행장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지난 1월 14일. 한준성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부행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본점 미래금융그룹 부문 사무실을 찾았다. 여느 대기업과 다를 바 없는 로비를 지나 사무 공간으로 들어선 기자는 생각지도 못한 분위기에 잠시 놀랐다. 스타트업과 금융사가 혼재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외국인 직원 두 명이 태블릿 PC를 들고 의견을 나누며 지나는 모습이나 밝은 분위기의 반 오픈형 업무 공간, 캠퍼스형 휴식 공간은 여지없는 스타트업 모습이었지만, 부행장실이나 회의실, 직원들의 딱딱한 옷차림에선 전형적인 금융사 분위기가 묻어났다.
“현재 디지털 금융 기술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이 IT업체들입니다. 대부분 은행은 이들 업체에서 기술을 사다가 쓰는 거고요. 은행이 금융과 디지털의 간극을 메우는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이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직접 합니다. 아웃소싱이 거의 없어요. 정말 필요하다면 사내 1Q Agile Lab을 통해 협력 작업으로 진행합니다. 직접 기획하고 개발하면서 스스로 역량을 쌓는 거죠. 그 과정에서 조직원들은 IT금융 전문가, 금융IT 전문가가 되는 거고요. 이는 KEB하나은행만의 차별점이자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특징이 미래에는 굉장한 경쟁력 차이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준성 부행장의 말이다.
◆ 돋보이는 능동적 대처
4차 산업혁명이 은행권의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혁신으로 소비자들이 기존 은행권 인프라를 거치지 않고서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은행들은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기업들이 IT 부문에서의 강력한 경쟁력을 무기로 그동안 은행들이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올해 시중은행들이 공통된 목표로 ‘디지털 금융 경쟁력 강화’를 외치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된다. 은행권의 디지털 금융 강화는 궁극적으로 현재 위기 상황의 타개, 즉 완전한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KEB하나은행은 현재 가장 돋보이는 금융사다. 2009년 12월 국내 은행권 최초로 스마트폰뱅킹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나, 2012년 전자지갑 개념을 도입해 서비스에 이용한 것 등을 고려하면 KEB하나은행의 디지털 행보는 타업종과 비교해서도 매우 빠른 편이다.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온 게 2009년 10월의 일이고, IT 외 부문에서 디지털 기술 발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쇼핑(유통)업계가 이에 대응한 게 2010년부터였음을 감안하면 KEB하나은행의 대처가 얼마나 빨랐는지 가늠할 수 있다. 특히 KEB하나은행의 전자지갑 서비스인 N Wallet은 당시 영미권에서 ‘파괴적 금융상품’으로 소개될 정도로 해외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KEB하나은행은 이후로도 디지털 부문에서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이며 ‘최초’ 서비스들을 대거 출시했다.
이런 배경 덕분에 KEB하나은행은 최근 은행권의 디지털 위기 상황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준성 부행장은 말한다. “어느 때나 기업은 항상 변화를 요구받아왔습니다. 은행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요즘 막 등장한 이슈 같지만, IT 이슈, 디지털 이슈는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은행권에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해왔습니다. 30년 전에는 영업점 간 데이터 공유 이슈가, 20년 전에는 인터넷 보급 확대에 따른 온라인 이슈가 있었죠. 미래금융R&D본부, 미래융합기술원, 하나금융TI 같은 시설에서 알 수 있듯 KEB하나은행은 디지털 이슈에 항상 능동적으로 대처해왔습니다. 현재는 미래금융그룹을 중심으로 완전한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 피할 수 없는 대세
은행권의 디지털 금융 경쟁력 강화는 시대의 흐름이다. 30·40대가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시점이 되면 은행권의 ‘디지털화’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될 확률이 높다. 30·40대만 하더라도 이미 충분히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여서 이들의 기성세대 편입은 디지털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도 디지털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은행 리테일 업무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체감이 쉽다.
기술이 고객 경험을 좀 더 고차원적으로 심화시킨 것도 은행의 디지털 전환을 부추기는 요소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현대 소비자들은 과거 소비자들보다 취득하는 정보의 양이 훨씬 많아졌고 정보 유통능력 또한 크게 향상됐다. 이제 고객은 은행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고도 여러 금융기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을 비교·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과거엔 고객에게 좀 더 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고객 경험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지만, 최근엔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의 폭과 깊이가 크게 심화됐다.
한준성 부행장은 말한다. “과거에는 직원이 고객을 직접 응대하며 그때그때 수첩에 적은 내용이 고객 경험 제고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직접 접촉을 통해 고객의 성향이나 경조사 같은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었죠. 근래에는 데이터 인사이트가 그런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고객은 3년 후 집에 대한 니즈가 생긴다’ 같은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하죠. 이제는 그것 또한 넘어서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객의 SNS나 포털 검색 활동 등을 통해 니즈를 유추하고 고객의 라이프 사이클이나 감정적 요소까지 고려해야 하는 식이죠. 자동차 검색이 늘면 적시에 자동차 관련 금융상품을 추천하면서 ‘그 자동차를 누구와 어떻게 탈까’ 같은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준비가 된 은행과 안 된 은행, 결과 차이가 명확하지 않을까요? 은행이 디지털 전환을 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디지털 전환의 어려움
디지털 전환은 KEB하나은행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금융사의 공통된 화두이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디지털 전환은 복잡하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코어뱅킹 시스템(대신 매우 안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조직 구조와 성격까지 포함하는 전면 개편 수준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디지털 혁신 충격을 받은 선진 금융사들도 여전히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준성 부행장은 말한다. “예전에는 디지털 전환을 ‘고객이 모바일 뱅킹을 이용할 수 있게끔 디지털 채널을 만들고 또 이 채널을 통해 상품을 파는 것’ 정도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프런트 단에서 일어나는 인프라 구축 단계에 지나지 않아요. 은행이 고객 정보 흐름을 관리하고 이를 유용하게 이용해 고객과 소통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자동화를 통해 이들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 한발 더 나아가 미들 오피스와 백 오피스에서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내부통제까지 하는 것이 디지털 전환입니다.”
한준성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부행장은 국내 은행들이 프런트 단에서 제공하는 소비자 경험 측면에선 세계 톱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고객 정보 흐름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부분에선 선진 금융사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금융사들도 ‘완전한 의미’의 디지털 전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통적인 거대 금융기관들은 기존에 구축해 놓은 인프라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차 회사와 자동차 회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기존 금융은 마차 회사에, 디지털 금융은 자동차 회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선 어느 시점이 되면 대부분의 소비자가 자동차로 갈아탈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마차를 제작하거나 운영하던 은행들도 이제 자동차 쪽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문제는 마차와 자동차가 똑같이 사람과 재화를 이동시키는 수단이면서도 전혀 다른 물건이라는 거예요. 마차를 만들기 위해 지어놓은 공장, 운영하기 위해 사놓은 말, 마부, 마구간 부지 등 기존 인프라가 자동차를 제작하거나 운영하는데 거의 쓸모가 없다는 거죠. 완전히 다른 종류인 데 전환이 쉬울 리가 없잖아요. 기존 인프라를 모두 폐기하는 건 더욱 불가능하고요.”
◆ 50% 금융사는 전환 포기?
이에 관해 기자와 한 부행장 사이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한 부행장: 저희는 전통적인 글로벌 금융사 가운데 50%가 위와 같은 이유로 디지털 전환을 포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기자: 앞서 은행이 디지털 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상반되는 말씀 같습니다.
한 부행장: 좀 더 정확하겐 기존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을 포기한다는 얘기죠. 물론 이들도 프런트 단에서 할 수 있는 디지털 채널 오픈과 상품 판매 정도는 합니다. 하지만 기존 인프라 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기존 금융사 디지털 전환 대신 디지털에 특화된 별도 회사를 만들어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거죠.
기자: 기존 인프라 처리보다 별도 회사 설립이 더 쉽기 때문인가요?
한 부행장: 맞습니다. 최근 설립된 핀테크 기업들, 인터넷은행들은 처음부터 자동차 회사로 기업을 꾸린 거잖아요. 마차 인프라 처리나 전환 없이 자동차에 최적화된 상태로 시작하는 거죠. 이 장점을 취하려는 겁니다.
기자: 기존 은행권의 디지털 시대 대응은 여러모로 치열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부행장: 디지털 기술을 갖고 있는 IT 기업들이 이제 금융을 하겠다고 하니까요. 그동안에도 은행이 디지털 쪽 대응을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 기술을 창출하는 기업은 아니었잖습니까.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기자: KEB하나은행도 디지털에 특화된 별도 회사 설립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한 부행장: 저희는 확고하게 ‘스스로 디지털 전환 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자체 변신하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직접 다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기자: 기존 은행권의 디지털 전환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한 부행장: 경영전략과 기술입니다. 디지털 전환이니까 디지털 기술은 당연히 필요하겠죠. 제일 중요한 건 경영전략입니다. 조직, 문화, 프로세스 등 모든 게 디지털에 맞게 다시 세팅되어야 하는데 이건 경영전략의 몫입니다.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넓게 보면 경영전략의 일환이라 할 수 있어요.
기자: KEB하나은행은 기술 문제도 직접 해결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한 부행장: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기존 데이터 내용과 구조를 다 바꿔야 하니까요. 이전까지 은행들은 RDB(Relational Database) 구조를 썼습니다. 정보 저장이나 핸들링이 쉽거든요. 하지만 이걸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용이한 하둡(Hadoop)*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RDB는 인공지능 데이터로 활용할 수 없거든요. 쌓아놓은 데이터가 많으니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적용이 쉬울 거라는 착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고객 경험을 위해선 방대한 디지털 정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데 이건 기계에 맡길 수밖에 없어요. 결국 기존 DB와 구조를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하둡(Hadoop): 정형 데이터든 비정형 데이터든 관계 없이 대용량 데이터를 분산 처리할 수 있는 자바 기반의 오픈 소스 프레임 워크. 분산 파일 시스템인 HDFS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산 처리 시스템인 MapReduce를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한다. 여러 대의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각 서버에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해 속도가 빠르다.
◆ ‘최초’ 디지털 서비스 다수 보유
기술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있는 건 KEB하나은행의 대단한 강점 중 하나이다. 그동안 디지털 환경 변화에 빠르고 능동적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덕분에 KEB하나은행은 모든 은행이 디지털 경쟁력 강화에 혈안이 돼 있는 와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행보를 보이며 수많은 ‘최초’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한 부행장은 말한다. “많은 시도와 그에 따른 결과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실적을 냈든 그렇지 못했든 그 모든 것들이 KEB하나은행의 자산인 셈이죠. 기술적인 특징 중엔 이런 것도 있습니다. A라는 기술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도 A가 바탕이 돼 B가 개발되고 또 이 B를 바탕으로 C가 개발되는 식이죠. 그렇다면 A가 주목받지 못한 프로젝트라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요? 예를 들면 저희가 2012년 개발한 전자지갑 개념의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해외에선 굉장히 호평을 받았는데 국내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했죠. 사실 저희가 만들어놓고도 이 상품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뒤늦게 이 서비스가 주목을 받으면서 지금은 금융사에서 흔하게 쓰는 개념이 됐습니다. 하나멤버스도 이 서비스를 바탕으로 만든 거고요.”
한 부행장은 또 최초라는 타이틀에 굉장한 의미를 두고 있었다. 한 부행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최초라는 건 말 그대로 제일 처음이라는 말이죠. 내부에서 기획해 개발까지 한 최초 상품이나 서비스는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최초를 직접 만들었기에 이후 흐름을 보는 시각과 주도권이 생기거든요. 최초라는 타이틀이 저희 디지털 기술 능력을 입증해주기도 하고요. 이런 실적은 영향력 있는 파트너들을 접촉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미래에는 실력 있는 몇몇 기업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커뮤니티에 KEB하나은행이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물론 디지털 금융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KEB하나은행은 지금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디지털 금융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느냐’는 숙제를 안고 매일매일의 과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